▲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옛날에 맥가이버라는 분이 계셨어. 아주 훌륭한 분이셨지. 전세계를 무대로 악당들을 물리치셨다. 싸움의 고수도 아니요, 총칼을 다루는 것도 아닌데, 참 신묘한 재주가 있으셨어.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다 헤쳐 나가셨거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만 가지고 뚝딱뚝딱 사건을 해결하셨어. 뭐 이분 하시는 게 이래. 두꺼비 집 퓨즈가 끊어지면 껌 종이 은박지로 퓨즈 대신 꽂아. 그럼 전기가 통하고 죽었던 기계가 살아나지. 자명종 시계의 전선을 피부에 대서 땀이 나면 울리는 거짓말 탐지기를 만드셔. 한번은 말이야, 유모차 바퀴를 막 부셔. 가루가 될 때까지. 바퀴살 재료에 섞인 마그네슘으로 폭탄을 만드셨지. 그래, 어차피 미국 드라마니까 그러려니 하자.

맥가이버. 참 엄청나게 있기 있는 드라마였어. 오로지 천재적인 두뇌와 작은 스위스제 주머니칼을 이용해 악당들을 제압했다. 불의에 맞서는 정의의 영웅. 오, 미국인은 정말 정의롭구나!

그런데 보다 보니까 좀 이상한 거야. 잡아들이는 악당들이 맨날 아랍인이야. 처음엔 아, 아랍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인가 보다 했지.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잖아? 왜 악당은 항상 아랍인인 거야? 마침 한국은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미국 드라마 속 세상이 다가 아니란 걸 알게 됐지.

아하, 저건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덤비는 상대를 무조건 악당으로 그리는 거구나. 생각 해 보니 미국 액션 영화들에서도 악당은 죄다 아랍인이거나 제 3세계였어. 어떻게 자기들만 옳아. 정의롭게 보이던 미국이 저만 옳고 남들은 나쁘다는 소릴 자꾸 해야 할 정도로 켕기는 게 있나. 가만, 이거야 말로 정의롭지 못한데? 전혀 맥가이버 스타일이 아니잖아.

정의의 화신 맥가이버 얘기대로라면 미국 영화와 드라마들은 너무 부당한 거야. 자신을 그럴듯하게 그리기 위해 남들을 악당으로 왜곡하는 불의라니. 이게 참 아이러니야. 미국영화와 드라마에서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보다 보니 정말로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

이젠 영화든 드라마든 자기 편한 대로 남들 재단하는 이야기는 믿지 않아. 맥가이버 같은 인물은 요즘 영웅 이야기에 끼지도 못하지. 하기사 세상 돌아가는 이면을 모르고서 윗분들 말씀에 속은 맥가이버는 무슨 죄냐. (이쯤 되면 천재적인 두뇌는 아닌 거 같군.)

요즘 기자들을 보면 맥가이버를 보는 기분이야. 과거에 기자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어수룩한 사람들의 눈이 돼 줬다. 특히 전국민이 민주화 열망에 휩싸였을 때, 기자들의 활약은 대단했어. 기자로서의 사명을 걸고 뛰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좀 이상하더라고. 몇몇 신문사와 기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춰 기사를 쓰는 거 같은 거야. 정권을 누가 잡는지, 광고를 누가 대주는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걸 알아챘지. 어느 한 쪽 입장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욕망을 따라 이런저런 낱말을 톡톡 박아넣더라구. 그래야 잘 팔리니까.

전 정권 잘못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중국에 간 대통령이 홀대를 받았다는 기사를 써. 그 홀대, 홀대 받아서 안타깝다는 게 아니라, 홀대 받은 걸 보니 대통령과 정부가 참 비굴하고 능력 없단 말을 하려는 지렛대인 거지. 정상끼리의 만남은 수개월 전부터 외교 실무진 사이에서 조율하는 건데 외교 일정과 내용이 어떻게 결정된 건지는 심도있게 안 써. 한국과 중국 사이에 패인 골을 메우려면 중국 대중의 마음을 훔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 서민들이 찾는 식당에 대통령이 간 건 혼밥으로 쓰는 식이지.

급기야 취재 기자가 중국에서 경호원들에게 맞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런 기사에선 육하원칙이 흔적만 남아 있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까지는 있는데 어떻게와 왜가 없어. 집단폭행 당했다는데 무슨 이유로 몇 명으로부터 당한 건지 상세한 건 없었지. 그런데 이 종잡을 수 없는 기사를 척 하니 내 놓고선 청와대가 문제라는 식이지.

비민주적 정권 아래에서 신문사와 기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본 독자들은 언론의 생리를 학습하고 있었어. 역시 권력과 자본, 이 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 그걸 알아 보는 눈치를 어떻게 키웠겠어. 다 기자들이 지금까지 쓴 기사에서 얻은 거야.

외교 일정은 언제부터 짜는 건지, 정상회담의 이면엔 어떤 준비가 있는지, 정치외교 행보의 사안 마다 어떤 목적이 담기는지 그런 걸 어떻게 알게 됐겠어. 다 기자들의 기사 덕택이야. 그런데 이번에만 유독 그런 내용 보다 본인들 입맛에 맞는 기사들만 나오니, 그걸 비난하지 않을 수 없지.

요즘 사람들은 80년대의 순둥이들이 아니야. 배울만큼 배웠고 그만큼 생각할 줄 아니까. 사람들이 뭘 몰라서 기자들이 폭행 당했는데도 비난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너무 잘 알게 되서 비난하는 거지.

맥가이버 같은 거야. 정의를 말하는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자기들만의 정의를 주장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는 거지. 본인들이 늘 말하던 내용으로 학습한 독자들이 그걸 가지고 배운대로 지적하는 거야. 맥가이버 드라마를 비난 했을 때처럼. 여론 조사 해 보니 지금 그런 사람들이 열에 일곱이다.

운동장에서 럭비공을 던지면 사람들은 럭비공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튀어다닌다고 생각해. 그런데 럭비공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자기한테 마구잡이로 튀어 덤비는 것처럼 보이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겠지. 누군가의 칼럼에 적힌 '문빠가 미쳤다'라는 문장은 그렇게 해서 나와. 어떤 장이든 열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야. 말은 않지만 밝은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세상의 대부분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열에 일곱이다. 그들 모두가 미쳐 있겠어 설마?

사람들에겐 더 이상 정의로운 맥가이버는 필요 없어. 시민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세상을 제대로 판단 할 줄 알게 됐거든. 자신들의 주권을 인식하게 된 이들이 직접 세상의 주체가 된 시대가 온 거야. 그러니까,

맥가이버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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