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뱅크

사법질서 교란·억울한 피해자 양산
처벌 피하려 ‘면피성’ 무고도 많아

무고죄 처벌 강화 국민청원 잇따라
현행 처벌 관대…‘시기상조’ 의견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영화 ‘더 헌트’는 한 여자아이의 거짓말 때문에 아동성추행범으로 몰린 유치원 교사 루카스(매즈 미켈슨 役)의 삶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루카스는 일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 이웃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루카스는 결국 혐의를 벗게 되지만 ‘아동성추행범’이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고 이웃의 위협은 계속된다.

무고한 사람이 혐의를 받아 삶이 망가지는 일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성범죄자로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잇따랐다.

유명 시인부터 중학교 교사까지…무고로 ‘극단적 선택’

지난해 10월 한 SNS유저는 <목숨>, <식물의 밤> 등의 시집을 펴낸 시인 박진성씨가 2015년 당시 미성년자인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자 뒤이어 박씨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습작생들에게 수년 간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한 여성은 ‘노래방에서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박씨는 성관계를 맺은 것은 인정했으나 합의된 관계였다고 반박했다. 또 성희롱·성폭행에 대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이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최초 문제가 제기된 후 1년 가까이 지속된 이 사건은 결국 10월 1일 검찰이 박씨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하며 마무리된다. 이후 박씨는 자신을 허위로 고소한 두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이들은 각각 기소유예와 벌금 처분을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미 ‘성범죄자’ 낙인이 찍힌 박씨는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할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박씨는 지난 2일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가족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 8월에는 전북 무안의 한 중학교 교사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A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 7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직위해제 돼 교육청 산하 학생인권교육센터(이하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신고한 학생이 ‘거짓말’이라고 털어놓으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A씨를 신고한 모든 학생들이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학부모들까지 나서 A씨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교육청에 제출했다. 경찰도 내사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인권센터는 “학생들이 성적 자존감이 낮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거나 강요된 진술일 수도 있는데 탄원서로 기존 진술을 모두 무효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성희롱과 체벌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자 ‘성추행 교사’ 낙인이 찍힌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유족은 “A씨가 누명을 쓴 것”이라며 “교육청이 최초진술만으로 학생들에게 유도심문을 하는 등 무리한 조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6월, 동아대학교 미술학과의 B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교수는 당시 술자리에서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 동아대학교 B교수 자살 사건 관계도 ⓒ투데이신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5월, B교수가 재직하던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경주에서 야외 스케치 수업이 진행된 후 가진 술자리에서 B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으며, 증거사진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자보가 게시된 다음 달 B교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B교수의 유족은 억울하다며 경찰에 정식 수사를 요청했다. 수사결과 대자보를 게시한 C씨가 실제 있지도 않았던 일을 대자보에 써서 게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B교수의 동료인 D교수가 ‘B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린 사실도 드러났다. D교수는 B교수와 함께 야외 스케치 수업을 진행하고 술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조사결과 술자리에서 제자를 성추행한 것은 B교수가 아니라 D교수였으며, D교수가 이 사실을 덮으려 거짓 소문을 퍼뜨린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대자보를 게시한 C씨는 이 소문을 듣고 스스로 대자보를 쓴 것이 아니었다. C씨에게 대자보를 쓰도록 종용한 것은 같은 학교의 E교수였다. 당시 E교수는 학교에서 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으로 내부 감사를 받고 있었다. E교수는 자신의 사건이 이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 소문을 확산시키려 C씨에게 대자보를 게시하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결국 D교수는 파면 당했다. 대자보를 쓴 C씨는 퇴학조치 되고 11월 22일 법정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지난 2일 시작된 무고죄 처벌 강화 국민청원에 14일 현재 1만 6000여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무고죄 발생 증가…처벌 강화 목소리 높아져

경찰청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고죄 발생 건수는 총 3617건으로 2012년 2734건 보다 32.3% 증가했다. 전체 무고죄 발생 건수 중 성범죄 무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40% 가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무고죄 발생이 증가하고 사건이 잇따르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청원자들은 “무고죄는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인생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0월 17일 게시된 무고죄 처벌 강화 청원에 참여한 한 누리꾼은 “합의된 성관계 후 금전을 갈취하기 위해, 여성의 진술만을 근거로 남성에게 성범죄 누명을 씌우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무고죄 처벌 강화 청원은 이달 2일 게시된 것으로 14일 현재 1만6000여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이 청원에 참여한 한 누리꾼은 “한사람의 인생과 그 주변인까지 상처 입히는 범죄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인 A(29)씨는 “꽃뱀들이 성범죄를 조작해 무고하는 경우도 흔하다”며 “우리나라는 무고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관대하다”고 주장했다.

남성단체들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안티페미협회 남거성 상임대표는 “무고는 사법질서를 교란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해 사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며 “무고죄를 강력히 처벌하고 사회적 폐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고죄 처벌이 강화되면 사회적으로 경각심이 생길 것”이라며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억울한 무고 피해자의 양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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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수사 신뢰도 제고 우선’ 주장도

그러나 무고죄 처벌 강화에 앞서 성폭력에 대한 수사기관의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9일 대법원은 15세 여중생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과 2심은 “중학생이 우연히 알게 된 부모 또래의 남성과 며칠 만에 좋아해 성관계를 맺었다고 수긍하기 어렵다”며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피해자와 연인 사이라고 주장한 연예기획사 대표의 주장을 인정하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성 착취를 수월하게 하고 폭로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신뢰를 쌓거나 성적인 가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에게 통제 기술을 사용하는 ‘그루밍’ 수법을 간과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활동가는 “‘합의 하에’, ‘사랑해서’라는 가해자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의 경우 성폭력 사건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등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성폭력 무고죄가 성립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대립되는 경우 불기소, 무혐의 처분한다”면서 “증거확보가 쉽지 않은 성범죄의 특성상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으려 역공격하는 성격의 무고죄 고발이 많은 상황에서 무고죄 처벌 강화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폭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뿐 아니라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성폭력 수사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면 무고죄 처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고로 인해 죄가 없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실제 피해를 입었음에도 무고죄를 우려해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칫 성별 대립으로 흘러가 평행선을 달릴 수 있는 논의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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