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찬 연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강서희 기자】 젊은 날의 사랑과 우정,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학창시절 친구들과 나눴던 추억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때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들은 마치 타임머신과도 같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이 바로 그런 존재다.

故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음악과 실화를 담은 <그 여름, 동물원>은 80년대를 보낸 세대들에게 그 시절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있다. 순수했던 시절의 빛나던 날들, 그리고 청춘의 고민까지까지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초연 이후 쉼 없이 3년 넘게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그 여름, 동물원>은 ‘힐링 뮤지컬’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동물원 멤버였던 그 친구(김광석), 창기, 기영, 준열, 경찬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30여년 간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과 많이도 닮아 있다.

<그 여름, 동물원>의 박경찬(37) 연출은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함, 진솔함이 가득 담긴 무대가 관객들에게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보여준 무대보다 앞으로 보여줄 무대가 많다는 박경찬 연출. 본지는 지난 10일 부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Q. <그 여름, 동물원>이 벌써 3년째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전 시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2015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첫 막을 올린 뒤 2016년부터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500석 규모의 중극장에서 1000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옮겨진 만큼 규모에 맞게 좀 더 풍성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시즌은 전 시즌보다 좀 더 뮤지컬적인 형식을 띠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청 앞’ 같은 곡은 안무 장면을 넣고 뮤지컬적인 편곡으로 바꿨습니다. 김광석(그 친구 役)과 창기의 갈등신은 불협화음을 넣어 갈등구조를 더욱더 드러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무대 마지막에서는 앙코르곡을 넣어 감성에 젖어있는 극 분위기를 반전시켜 관객들이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기자 역시 공연을 봤는데 재미와 감동 가득한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인물들을 그린 뮤지컬이다 보니 극적인 부분이 덜할 수도 있지만 작위적, 인위적이지 않아 작품이 갖고 있는 잔잔함과 애잔함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 여름, 동물원>은 가족단위로 오시는 관객분들이 많아요.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가족들끼리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연출자로서 뿌듯합니다. 공연이라는 장르가 시대를 초월하고 같이 무언가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다는 거. 그런 작품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게 참 행복합니다.”

Q. 극이 창기의 기억부터 시작되는 만큼 주인공은 김광석이 아닌 창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사랑해주시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다 보니 포커스가 김광석으로 맞춰집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만남과 이별, 죽음 등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뒤 어떻게 견뎌내고, 추모하고, 기억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창기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김광석을 소소하게 생각해내고 기리는 모습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과거 동물원 연습실로 가는 골목길을 보여주는 영상도 공연 첫 장면에 넣었습니다.”

Q. 배우들이 직접 기타를 연주하고 드럼을 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몇 달에 거친 연습 덕분이에요. 사실 배우 중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음악팀과 배우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완성도 높은 라이브 연주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Q. 이번에는 본업이 가수인 분들부터 영화배우, 탤런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분들의 캐스팅이 눈에 띕니다.

“지난 시즌부터 가수 홍경민 씨와 작업했는데 홍경민 씨의 절친인 유리상자 이세준 씨가 저희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이세준 씨를 창기 역으로 섭외하면 어떨까 했어요. 그분의 음색이나 외모가 창기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출연이 가능하신지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흔쾌히 수락을 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빠지지 않는 배우 조복래, 윤희석 씨와도 같이 작업하게 돼서 좋았습니다.

Q. 사실 밴드는 합을 이루는 작업이 많다보니 극 중 동물원 멤버 간의 갈등처럼 실제 <그 여름, 동물원> 멤버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을 거 같은데요. 그 안의 또 다른 작은 드라마가 있나요.

“분명히 그런 것도 있죠. 연습을 하다보면 서운한 부분도 있고요. 사실 저희가 페어가 많다보니 연습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선배들은 잘 이끌어주시고, 후배들은 잘 따라와줘서 연습실은 매우 재밌고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Q. <그 여름, 동물원>에서는 붐박스부터 별밤 라디오, 선데이서울 등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3,40대부터 5,60대까지 다양한 계층의 관객분들이 많더라고요.

“작품이 8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청재킷, 맥가이버 머리, 삐삐 등 그 시대를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 시절을 보낸 분들이 공연을 보러 많이 오십니다.”

Q. 최근 공연장 누수로 2주일간 공연을 중단하기도 했는데요.

“몇 달 동안 준비한 공연이 갑작스럽게 중단될 수밖에 없어서 스텝, 배우들 모두 황당했죠. 빨리 공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요, 배우분들도 잠시 쉬는 동안에도 개인별로 연습을 계속 진행하면서 다시 찾아뵐 때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찾아뵈고 인사드릴 수 있어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는데요.

“지난달 말 홍콩에서 쇼케이스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보니 우리의 감성을 이해할까 걱정이 있었는데 공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앞에 계신 관객분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음악이 주는 정서, 만국공통어인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지 관계자분들도 공연을 본 뒤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 김광석, 그리고 동물원

Q. 벌써 3년 전 얘기지만 처음 <그 여름, 동물원> 대본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대본이 막힘없이 잘 읽혔어요. 그리고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강해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Q. 사실 최근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해 숱한 의혹들이 일면서 공연 연출자로서는 호재보다는 악재였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죽음과 관련해 아직도 온갖 루머가 많은 김광석을 다루는 뮤지컬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게 많았습니다. 특히나 전 부인인 서해선 씨와의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만큼 공연 컴퍼니측에 저작권이 누구에게 가는지 묻는 전화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해요. 쇼케이스 때 음악감독인 박기영 선생님이 얘기한 적도 있지만 동물원 선배님들이 만들었었던 노래들, 김광석 다시 부르기로 알려진 노래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해순 씨에게 돌아가는 저작료는 없습니다. 이번 시즌 공연이 시작될 때쯤 서해순 씨와 관련된 논란들이 잠잠해져서 그런지 공연으로만 봐주실 뿐 이에 따른 영향은 없습니다.”

Q. 한국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인 김광석과 동물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부담이 됐을 법도 한데요.

“아무래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죠. 대중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분들인 데다가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분들이잖아요. 처음에는 큰 부담이 됐는데 동물원 선배님들이 공연을 보시고 난 뒤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셔서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이제는 전설이 된 김광석을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부담이 많이 됐을 거 같네요.

“배우들 역시 부담감이 있었을 거예요. 김광석과 관련된 글, 인터뷰, 사진, 음악을 공유하면서 많이 준비했어요. 당시 동물원과 김광석이 과연 당시에 어떤 심정으로 그런 노래를 불렀는지 가사말도 연구하면서 발자취를 따라가려는 노력을 했어요. 그렇지만 김광석의 노래를 모창하고,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사람, 김광석이 돼서 김광석의 옷을 입고 일체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연기와 노래를 해주길 바랐어요. 배우들이 제가 기대하고 원하는 대로 좋은 무대를 만들어줘서 감사할 따름이죠.”

Q. 300회 넘는 공연을 하면서 매번 볼 때마다 울컥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마치고 객석으로 퇴장하는 장면이 있어요. 창기가 그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죠. 담담하게 울리는 내레이션과 ‘회귀’ 노래가 흘러나오면 매순간 울컥하게 되더라고요. 이별은 언제 찾아올지 알지 못하잖아요. 그렇게 마지막인지 모르고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제게는 가장 마음이 쓰입니다.”

▲ 박경찬 연출 ⓒ투데이신문

나무 같은 연출가

Q. 한 작품을 한 연출가가 3번째나 올리고 있는데요. <그 여름, 동물원>의 연출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안 잘려서?(웃음). 좋은 작품을 세 번이나 역임해서 연출할 수 있게끔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이지요. 연출가로서 아직 덜 보여드린 것이 있어서 이 작품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런 욕심을 컴퍼니에서도 믿어주시고 지원을 해주셔서 좋은 작품을 세 번이나 연달아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Q. 33세의 이른 나이에 연출가로 입봉하고 난 뒤 <그 여름, 동물원>을 포함해 10여편의 뮤지컬과 연극을 작, 연출했는데요.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소회는 어떠한가요.

“일단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연출가에게 있어 복 중의 복이죠. 작품을 만들면서 항상 진솔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내실있고, 정성이 많을 쏟은 작품,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Q. 연출가로서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데도 고민이 클 것 같네요. 박경찬식 연출을 설명하자면.

“담담하게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무대를 화려하게 꾸민다든지, 연출적인 미장센이이나 색감이 돋보이기보다는 무채색을 띠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공연을 보다가 어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아니면 활짝 웃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제 나름대로의 정서가 있는 거 같아요.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작품. 인간의 내면, 심리가 잘 담긴 작품이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런 작품들로만 연출을 맡았네요.”

Q.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청춘난영’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김유정 소설가와 이상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하얀마음 하얀이’라는 작품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의 넘버를 작곡한 이성준 음악감독과 함께 작업 중입니다.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지.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가 외면하고 있거나 무지해서 조명하지 못한 이들을 주목하려고 해요.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잘 몰랐던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그 여름, 동물원> 넘버 중 ‘나무’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 하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저도 가사처럼 나무 같이 묵묵히, 그리고 무성히 활동하는 연출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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