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취미까지는 아닌데 자주 하는 게 있다. 유튜브에서 K-POP 리액션 영상을 종종 본다. 아이돌 그룹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덕분에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인기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리액션 영상이란 특정 영상을 보는 자신의 반응을 촬영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튜브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여러 분야의 리액션 영상이 있었는데, 요 몇 년 사이 K-POP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에서 K-POP reaction을 검색해 보면 대략 2000만개 정도가 나온다.

K-POP리액션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인이다. 100%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들이 만들어낸 화면에는 감격과 찬탄, 슬픔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러니까 리액션 영상의 핵심 콘텐츠는 표정을 짓는 자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이다.

한국 팬들은 리액션 영상을 찍지 않는다. 단지 리액션 영상 제작자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종과 문화가 다른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우리 눈에도 특별한 지점들과 겹치는 곳에서 일어난다. 내가 리액션 영상을 자주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서로가 공감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왜 위안을 주는가.

한국팬들이 자신들의 감정과 동일한 반응을 지구 반대편 리액션 영상 제작자들로부터 확인하려는 행위는 ‘내가 아는 정말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욕구와, 한국이 아직은 세계 연예문화의 변방이라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 봐 멋지지? 끝내주지?”, “우리한테 이런 멋진 게 있어!”

이유야 어찌 됐든 그들은 어떤 대상을 향한 원초적인 사랑의 감정에 동조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 한국팬들의 기뻐하는 반응을 보게 된 리액션 영상 제작자들은 그 반응에 또 즐거워하며 더욱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한다. 감정을 자원으로 하는 선순환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내 감정에 동조하는 상대의 감정에 동조하는 내 감정에 동조하는, 그러한 우리.

방탄소년단은 국내 중소기획사로부터 미약하게 시작했다. 변방으로부터 중앙으로 진출해야 하는 난제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첫 좌표는 한국 가요산업이 세계무대에서 가지는 위치와 겹친다. 멤버들은 이를 시작부터 명확히 했으며 팬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을 부탁했다. 때문에 아이돌과 팬덤 사이의 흔한 권력 관계 대신 팬덤이 곧 해당세력의 주체가 되어 당사자성을 갖는다. 여기에 리액션 영상 제작자들은 공감 확산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아이돌, 팬덤, 공감 확산자로 이루어진 이들의 관계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유대감으로 결속 되고, 결국 이름 없던 한 보이그룹을 세계 연예산업의 메카인 미국 주류 무대에까지 올려 놓았다. 리액션 영상은 공감의 확산이 세력의 점진적 확장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공감의 확산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개인에게 “내가 당사자야.”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그것들이 모여 기존 인식의 방향을 트는 큰 흐름을 만들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 어쩌면 인류는 원시시대 때부터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능력으로 생존해 왔으리란 생각을 한다. 취향이나 취미를 넘어 사회, 정치, 종교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도 동일하다. 지난 2016년 겨울의 촛불시위도 자신을 역사의 당사자로 인식한 이들이 주체가 돼 거대한 변화를 이끌었다.

작지만 비슷한 예는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일어났다. CBS에서 방영하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강연 영상이 기독교계 일부 단체의 반발로 삭제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결국 방영의 근본적인 권한을 갖기 어려운 세바시 제작진이 일단 책임지고 복구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영상 삭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던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문화 수준을 결정하는 당사자로서의 자의식을 피력했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면서 수습이 된 사례다.

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으로 항상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일을 매일 겪는다.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이란 문구를 성평등으로 바꾸려다 일부 시민단체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우리시대의 페미니즘은 온라인에서의 동력을 바탕으로 현실에 넘어오는 것에 진통을 겪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사를 정상화 시키기 위해 이해 못할 주장들과 맞서야 했다. 쉬운 건 하나도 없고 언제나 궁벽한 한 뙈기 양지를 사수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스스로를 날카롭게 벼리지 않고도 장막을 벨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아이돌 그룹의 십대 이십대 팬들로부터 배운다. 단지 사랑하는 감정 하나만으로 자신이 기존에 속해 있던 세상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그들은 부정과 혐오를 선택하지 않았다.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공감한다는 걸 널리 알리고, 유대감을 적극적으로 선포한다. 영상 속 해맑은 표정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K-POP리액션 영상을 본 적 있나요? 옳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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