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박영대 상임연구원

▲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박영대 상임연구원 ⓒ투데이신문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철저해야
해경·국정원·언론, 의혹의 핵심

‘국민의 관심’으로 ‘국가폭력’ 맞서야
2기 특조위, 기소권·수사권 반드시 필요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민 통합’을 이유료 세월호를 기억하는 상징인 ‘노란리본’ 배지를 달지 않았다.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예은아빠’ 유경근씨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진상규명 의지를 믿는다며 이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만큼 정권교체와 함께 진상규명도 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특조위 활동도 끝나 현실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4·16세월호가족협의회는 2기 특조위 출범 전까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 및 연구’와 이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목적으로 지난 1월 7일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이하 국민조사위)’를 만들어 발족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밝혀진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 정권이 교체되고 선체가 인양됐기 때문인지 세월호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조사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앞으로의 과제를 알리기 위해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의 공동기획으로 ‘세월호참사 팩트체크’를 출간하고 앞으로 밝혀야 할 것들을 알리기에 나섰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8일 ‘세월호참사 팩트체크’ 출간을 기획하고 집필에 참여한 국민조사위 박영대 상임연구원을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진상규명을 위해 남은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박영대 상임연구원 ⓒ투데이신문

Q. 지난 1월 7일 세월호 국민조사위가 출범한 지 반 년이 지났다. 국민조사위에 대한 소개와 그간의 활동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지난해 9월 30일 특조위 활동이 종료됐다. 이후 국민의 힘으로 ‘중단 없는 진상조사’와 ‘2기 특조위가 만들어질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국민조사위를 만들었다. 12월 준비위원회 회의를 하고 발족을 1월 7일에 했다. 그 전에 국회에서 첫 사업으로 ‘세월호 참사와 탄핵’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그 이후 시민연구원(자원활동가)를 모집해 세월호 아카데미라는 형태로 강연을 진행했다. 얼마 전에는 416연대와 공동으로 다시 한 번 세월호 아카데미를 7회 진행했다. 그리고 가장 가시적인 활동은 이번에 ‘세월호참사 팩트체크’의 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세월호와 관련된 언론 보도, 국정조사 자료, 해경 데이터와 전화 녹음 파일 등을 누구나 접근해 열람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아카이빙 했다.

현재는 2기 특조위로 넘어가기 위해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마지막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조사 대상자 발표’인데, ‘혐의 대상자’, 관련자‘ 등 기준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Q. 조사위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대(對) 시민홍보와 교육 등이다. 기본적으로는 연구를 맡고 있다. 조사와 연구가 약간 다른데, 예를 들어 인양에 대해 조사·연구를 진행 하면 조사를 했던 분들은 인양업체 선정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을 만나려고 하는 반면 나는 인양에 대한 참고 자료를 찾는다. 상호 보완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Q. 조사위가 출범 후 정권이 교제됐는데, 정권교체 전과 후 활동에 변화가 있었는지.

가장 문제는 정권이 교체된 후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내가 국민조사위에서 활동하니 친구들도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 친구들마저도 인양도 되고, 미수습자고 돌아오고 하니 ‘마무리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또 국민들도 ‘정권이 바뀌었으니 알아서 진상규명해 주겠지’ 하는 기대들이 있는 것 같다.

Q. 국민조사위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아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는 말이 있던데, 세월호 하면 가장 힘든 것은, 세월호는 ‘구조훈련을 제대로 안 했느니, 과적이니, 매뉴얼이 없느니’ 하는 차원을 분명히 넘는다. 그러니 진상규명을 하자는 것이다. 세월호의 핵심은 선박이 침몰하게 된 경위보다 ‘구조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음모론’이라는 등 비난을 듣게 되니 어렵다.

Q. 국민조사위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국민적 관심이 가장 필요하다.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홈페이지에 모아 뒀다. 자료들을 보시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세월호에는 국정원이 끼어 있기 때문에 진상을 밝혀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시민연구원 중에 해양대에서 항해학을 전공해 10년간 배를 타고 현재는 선박감독(선박의 수리와 관련된 일 및 물품의 수급 관리, 유류 관리 등 선박의 유지, 보수를 관리하는 직책)을 하는 분이 있다. 세월호 공부모임 중에 이 분이 해경 123정장 공판 조서를 3회까지 보고 하신 말씀이 ‘해경과 선원은 공모를 했고, 해경은 승객 구조의 의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범죄다. 공부해서 밝혀낼 것이 아니라 수사를 해야 할 사안이다. 얼마 전 ‘수현아빠’ 박종대씨가 검찰에 갔다 왔는데, 검사가 “검찰에서 세월호는 금기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검사는 ‘무능은 범죄가 아니’라며 해경 구조가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무능이 아닌 ‘구조를 안 한 것’이다.

Q. 2기 특조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찍부터 유가족과 시민들은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국가기구를 요구했다. 2기 특조위에는 기소권은 없고 경찰 수사권이 포함되기는 했다. 그리고 특검을 횟수 제한없이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한국사회 현실에서 수사권, 기소권이 있다고 무조건 진상규명을 장담할 수는 없다. 여기에 반드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특검이 11차례 있었는데, 모두 명명백백한 진상규명을 했던가? 박영수 특검이 성공한 이유는 천만 촛불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건 국민적 관심과 참여다.

▲ ⓒ투데이신문

Q. 최근 <세월호참사 팩트체크>라는 책을 조사위에서 출간했다. 출간 이유와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말씀 부탁드린다.

이 책은 내가 기획을 했는데, 1장에서는 선체의 구조와 사고 위치 등을 알리고 싶었다. 2장에서는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했다.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이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3장에서 주장한 ‘침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 외에도 언론의 기획된 오보와 선체 인양, 조사 방해 등 그동안 진행된 진상규명 활동을 기록하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는 않다. 이번 책은 하루이틀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출간했다.

Q.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많은 의혹들이 있다. 가장 핵심이 되는 의혹이 있다면.

핵심 조사대상은 1번이 해경, 2번이 국정원, 3번이 언론이다. 구조를 하지 않은 해경이 핵심이라는 것에 대해선 거의 이견이 없다. 국정원의 경우 조사가 쉽지 않다. 2기 특조위에서 ‘국정원을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더 어려울 것이다. 국정원은 압수수색하려면 국정원장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서훈 국정원장이 허락해준다면 가능할 것이다. 또 참사 당시 언론이 질서정연하게 오보를 낸다. 연합이 먼저 오보를 내면 이를 KBS와 MBC가 받았다. 당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경 인식에도 없는 오보가 나간다. ‘120명 구조’, 190명 구조‘, ’선박 이탈한 듯‘과 같은. 9시 55분 당시 120명 구조라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오보가 계속해서 발표됐다. 사전 시나리오가 있던 것이라는 의심이 가능하다.

Q.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련성에 대한 의문도 책에 담았다.

구원파한테 청해진해운의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받았다. 컴퓨터의 ‘색인’ 기능으로 ‘국정원’을 입력해 이 하드를 검색하니 수많은 자료가 나왔다. 심지어 ‘안기부’라는 단어도 나왔다. ‘2012년 안기부를 만나 3000cc 세 개에 안주 두 개 먹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물론 국정원을 안기부로 썼을 수도 있지만,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정말 오래된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2012년 10월에 도입해 다음해 3월 15일에 취항한다. 그런데 2012년 10월부터 국정원은 세월호의 도입, 운항, 침몰, 인양 등 전 과정에 개입돼 있는데 그 이전부터 청해진해운은 국정원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 ‘정기모임’도 있었다. 국정원이 분명히 개입돼 있다.

Q. 박 전 대통령의 ‘7시간’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뭘 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안 구한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너무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에 가십성으로 몰입하지 않았나 싶다.

Q. 책에서 준비 과정부터 활동까지 특조위 활동 전반에 걸쳐 국가에서 방해했다고 했는데.

참 꼼꼼하게 방해했다. 진상규명국장을 임명하지 않고, 위원회 파행시키는 등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다.

Q. 세월호 선체 인양 후 선체조사 방법에 대해서도 선체 훼손 등 문제가 많이 제기됐는데.

해수부는 고의로 인양을 지연시키고 선체를 훼손했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조선강국이다. 10~20만톤 짜리도 바다에 올리고 땅으로 옮기고 하는데, 고작 6000톤짜리, 물과 화물 무게를 포함해도 1만6000톤짜리를 못 올렸다는 것은 ‘안 했다’는 것이다.

인양 방식에 있어서도 애초 잭업 방식으로 결정됐던 것이 크레인-부력재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기본적으로 크레인을 이용해 배를 들어올리되, 세월호가 크레인보다 무겁기 때문에 선체 구조물을 절단하고 내부에 부력재를 넣어 인양하겠다는 것이다. 상하이샐비지는 세월호 내부에 철재 부력제를 넣기 위해 140여 군데가 넘는 구멍을 뚫었다. 이 방식은 미수습자 유해의 유실 가능성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처음 거론됐던 잭업 방식으로 다시 변경해 인양을 진행했다. 또 선체를 바로 세워서 인양해 선체수색을 수월하게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하이 샐비지와 해수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양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 지난 9월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조은화·허다윤 양을 위한 이별기도회 ⓒ투데이신문

Q.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넘었다. 지난 주말 조은화, 허다윤님의 이별식이 있었다. 감회가 어땠는지.

이번에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 강연에서 나온 말인데,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11일에 사실 수중수색 중단을 요청하도록 강요 하지 않았나. 또 지금 유가족이 원하는 것 중에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2기 특조위, 안전공원, 4·16재단 모두 전혀 진척이 없다. 앞으로도 가족에게 어떤 선택이 강요돼선 안 된다.

세월호를 공부하면서 5·18을 함께 공부했다. 5·18도 특별법, 진상규명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세월호도 5·18과 마찬가지로 국가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는 전 국민이 가슴아파하고 몇 년 동안을 이어온 싸움이다. 5·18은 전 국민이 발포 명령자를 알고 있는데도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세월호는 밝혀진 것이 없으니 한참을 더 싸워야 할 수도 있다. 때문에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Q. 뼛조각을 찾아 수습됐지만, 온전한 수습은 아니었다. 미수습자 수습에 대해 국민조사위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양승진 선생님 같은 경우 수습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책임문제를 말하자면, 당시 선원들이 초기에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당시 선원들은 자유롭게 선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대피안내를 한 것이 아니라 선원들끼리만 정보를 주고받았다. 선원들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다.

Q. 미수습자 수색은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갔다. 남은 미수습자들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능성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선체 인양과정에서 이동한 구역을 정밀하게 수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거 이야기를 하면, 유실 방지 대책과 유실방지 망이 너무 허술했다. 세월호가 높이 24m, 폭 22m인데, 3m 높이의 펜스를 설치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박영대 상임연구원 ⓒ투데이신문

Q.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마련돼야 할까.

‘광주 5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배상, 명예 회복, 기념 사업이 그것이다. 세월호에도 마찬가지로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진상규명이 가장 먼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치유 효과도 있다.

Q.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일어났다고 수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선령 규제 완화, 과적, 관리·감독 허술 등을 말하는데, 책에서도 말했듯 아직 정확한 침몰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침몰원인이 무엇이든 충분히 구조를 할 수 있었는데도 구조를 하지 않은 것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다. 얼마든지 구조할 수 있는 시간과, 인력, 장비 등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구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구하지 않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진상규명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다가가기 힘든 이유가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선박 해양 관련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마 일부러 안 구했을까’하는 생각이다. 한국은 그 ‘설마’가 사실이 되는 나라다. 국민조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세월호 관련 1차 자료들을 탑재해 놨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1차 자료들을 읽고 안 구했다는 세월호 참사의 본질 및 진실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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