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무릎 꿇은 장애학생 부모들 ⓒ뉴시스

4년째 이어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갈등
찬성측·반대측 의견차 쉽사리 좁혀지지 않아

찬성 “2시간 넘는 통학, 절실할 수밖에”
반대 “이미 1곳 존재…지역균형 설립 위배”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들어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빈 교실이 늘고 있지만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특수학교 추가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번번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학생을 둔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으며 주민들에게 학교건립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바로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육문제(특수학교)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특수학교 설립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좀처럼 찬·반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뉴시스

4년째 특수학교 설립으로 갈등

2013년 서울시는 특수학교 부족에 따른 진학의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원거리 통학을 하고 있는 장애학생들을 위해 가양동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공립 특수학교를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19년 3월까지 지적장애학생 106명(16학급)을 대상으로 하는 중·고·전공과정을 둔 ‘서진학교(가칭)’ 설립을 계획했다.

그해 11월 25일 해당 사안을 행정예고했지만, 서울시의회의가 예산을 삭감함에 따라 계획은 한 차례 물거품이 됐다. 결국 2014년 8월이 돼서야 비로소 특수학교 설립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소식을 접한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미 강서구에는 1곳의 특수학교(교남학교)가 존재한다는 것.

서울시교육청은 주민들의 반발에 못 이겨 2015년 9월 대체부지를 검토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고, 결국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 31일 공진초 자리에 특수학교를 세운다는 2차 행정예고를 했다.

찬·반의 입장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지난 7월 6일 서울시교육청은 합의점을 찾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 1차 주민토론회를 주관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양측의 갈등이 극심해 제대로 된 토론은 해보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리고 지난 5일 2차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상황은 1차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양측의 의견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상황이 점점 격해지자 장애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무릎까지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서울시의 특수학교 대상자는 1만2929명, 이들 중 서울 소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4496명뿐이다. 이들 중 다수가 거주지 인근에 특수학교가 없어 인근 지역으로 2~3시간 걸려 통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서울 25개구를 통틀어 특수학교가 국립 3곳, 공립 8곳, 사립 18곳 등 총 29곳이 있다. 서울시는 2002년 종로구 경운학교 이후 공립 특수학교를 1곳도 신설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특수학교가 1곳도 없는 지역도 있다.

강서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서구의 특수학교 대상자는 645명이지만, 특수학교는 교남학교 1곳뿐이다. 교남학교에 따르면 본교에는 현재 초등과정 6학급, 중등과정 4학급, 고등과정 4학급, 전공과정 2학급이 있다. 특수학교의 경우 법적으로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은 학급당 6명, 고등과정은 7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것을 감안하면 교남학교에는 전공과정을 제외한 총 101명의 학생을 수용 가능하지만 현재 103명이 재학 중이다. 이는 정원을 초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강서지역 특수학교 대상자 645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다수의 학생들은 타 지역의 특수학교로 원거리 통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것이 바로 모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애학생을 둔 강서구 부모들이 끝까지 특수학교 설립만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 ⓒ뉴시스

지역이기주의 ‘님비현상’인가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지역주민들의 이기적인 ‘님비현상’이라는 비난 여론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강서한강자이아파트 입주민회의 한연철 감사는 “무조건적으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감사는 특수학교가 없는 인근의 양천구에서 강서구로 통학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현재 양천구에서 특수학교가 필요한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학교를 지으면 그만큼 강서구에는 TO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기에 부족하다고 하면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건립하는 것을 동의한다”고 전했다.

이어 “양천구는 좋은 건 자기네 지역에서 하겠다고 하고 아픈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며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아픔을 같이 나누자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총연합회 이용석 정책실장은 “양천구에도 언제고 특수학교는 세워질 예정”이라며 “반대하시는 분들이 강서구 전체 주민을 대변할 수는 없다. 한 언론을 통해 반대주민 외에 다른 주민들이 찬성 의견을 결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을 ‘교육청의 미숙한 행정처리’를 꼬집었다. 

이 정책실장은 “교육행정상 특수학교 설립 일정은 이미 정해진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에서는 장애학생 부모와 지역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설득하라고 했다”면서 “지역주민을 설득하는 것은 교육청의 역할이지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학교가 지어지면 체육관이나 수영장 등 부속시설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우선돼야 할 것 같다”면서도 “특수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우리가 지역 주민들에게 무얼 해줘야 하는 상황이 난감하다. 일반학교 중에서 학교를 지으며 주민들과의 상생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냐”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게티이미지뱅크

특수학교 설립 = 집값 하락 + 안전 위협?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특수학교가 이미 1곳 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먼저 부동산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다. 일각에서는 특수학교가 들어서게 되면 인근의 집값이 하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깔려있는 게 사실. 

게다가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강서구을)이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자, 특수학교 설립 반대측은 강서구가 허준의 출생지라는 이유를 들며 국립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대형병원이 들어서면 인근 지역의 부동산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며 앞선 지적에 힘을 실은 셈이 됐다.

하지만 공시가격 열람이 가능해진 1996년 이후에 세워진 서울 11개 특수학교 인근의 표준·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모든 지역에서 연평균 7~17%의 상승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원동이나 삼성동 등 서울 강남권의 경우 현재까지 300%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본지에 “특수학교가 들어섰을 때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 없다”며 “(주민들에게 특수학교를 활용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방병원도 마찬가지다. 종합병원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맹목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안전위협이 거론되고 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 A씨는 부동산 하락보다는 ‘발달장애인’ 학교라는 사실이 더 우려된다고 했다. 

A씨는 “차라리 눈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맹인학교면 괜찮겠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뉴스에서도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안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나”라고 걱정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지석연 작업치료사는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선입견과 편견”이라며 “비장애인들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발달장애인의 상동행동(자폐성 장애인이 보이는 반복적인 행동) 등은 감각이 예민한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감정 콘트롤을 하는 과정일 뿐 누구를 해치거나 하는 위험 행동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 치료사는 강서구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현상은 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발달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도움받을 만한 일이 생각보다 많다. 발달장애인을 무조건 배제하지만 말고 함께 공동체를 이뤄 살다 보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시스

조희연 교육감 “교육, 인간의 기본권…주민 이해 바라”

조 교육감은 예정대로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 교육감은 지난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교육행정을 임함에 있어 교육감은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당연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교 건립은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추진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시사했다.

이어 “특수학교는 (장애학생과 그 부모들의) 생존권과 같은 것이자 인간의 기본권”이라며 “ 당연히 있어야 하고 기본이 돼야 하는 것이다. 가부를 따질 그런 사안이 아니다. 그런 정도의 국민적 인식과 공감대가 필수인데,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현재 갈등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끝으로 “특수학교를 특수하게 바라보는 것이 특수하다. 특수학교를 상식적이고 보편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지만 장애가 장애로 인식되지 않는 것, 장애도 그냥 우리의 보편적 일부로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그런 것이 필요하듯이, 특수학교도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그런 상태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행위가 헌법의 평등정신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지난 18일 “지역 발전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장애인 특수학교가 지역사회 안전이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며 “유독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만을 반대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학령기 장애아동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의 동등한 향유를 막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육부장관과 각 시·도교육감에게 특수학교 신설에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서울시장과 강서구청장에게 특수학교 설립 반대 등 장애인을 배제하고 거부하는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 개선 노력 등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갈등의 종지부, 주민과의 상생이 관건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비단 강서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초구 염동곡 옛 언남초등학교 자리에 설립할 예정이던 나래학교의 경우 강서구와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인근 내곡동에 다니엘학교라는 특수학교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특수학교 지역균형 설립’ 원칙에 어긋난다며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

중랑구 동진학교의 경우 서초구와 강서구보다 먼저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됐지만 5년째 학교를 세울 부지조차 정하지 못해 개교를 2020년 3월로 미뤘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물론 좋은 선례도 있다. 일원동의 밀알학교는 주민들의 반발로 시공식 조차 못할 정도였지만 현재는 교내 미술관과 음악홀, 카페 등을 주민들에게 연중 개방해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강북구의 효정학교도 학교차원에서 주민들에게 교내 헬스장을 개방하고 주민 공청회나 모임 때 교내 식당과 광장을 내주는 등의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심 교수도 “해외에는 주민들에게 학교 도서관이나 운동장을 공유하고 교내에 유치원이나 박물관을 건립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상생하는 사례가 많다”며 “혐오시설로 받아들일만한 요소의 유무에 따라 상황은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상 공진초 부지는 이미 특수학교 부지로 행정예고가 이뤄진 상황이기 때문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갈등 해결을 위한 칼자루는 총 책임자인 서울시교육청이 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강서구의 풀리지 않는 갈등의 실타래를 현명하게 풀어내고, 향후 설립될 특수학교들의 귀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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