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범구 전 의원 ⓒ뉴시스

신삼국지인물전 연재를 시작하면서 ‘정치인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회에서는 정범구 전 의원을 다룰 것이므로 독자 여러분께서 ‘말을 바꾼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정범구 전 의원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말을 바꿨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범구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학자이고, 평론가이고, 방송인이었다. 정범구가 활약할 당시 SNS가 있었다면 아마 현재까지 유력한 인물로 대중에게 회자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이 사람의 명성은 높았다. 명성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정범구를 정계로 이끌어 냈다.

2017년 5월,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각계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조화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새로운 사람만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본다. 지혜와 경험이 풍부하고,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는 노장이 있어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정범구와 같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황충은 유표 밑에서 벼슬을 하다가 유표가 죽자 한현의 장수가 되었고, 이후 유비의 신하가 된 장수다. 이후 ‘오호대장’이 되어 활약을 펼치다가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일으킨 전쟁에 출전했고, 이 싸움에서 전사했다.(정사 『삼국지』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나는 황충의 출신이 ‘비주류’였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활약을 펼쳤다는 점, 경험이 풍부한 노장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정범구의 행적을 살펴보았다. 

● 황충(黃忠, ?-220)

변방의 늙은 장수

유비는 한중왕(漢中王)이 된 후에 다섯 명의 용맹한 장수를 ‘오호대장’에 봉해 주었다.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황충(黃忠)이었다.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발끈했다.

“장비는 내 동생이고, 마초는 좋은 집안 출신이며, 조자룡은 오랜 동안 우리 형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이므로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이므로 대장이 될 자격이 있지만, 황충은 어떤 사람이라서 나와 같은 반열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대장부가 어찌 늙은 졸개와 자리를 함께할 수 있겠는가!”

황충은 원래 유표 밑에서 중랑장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후 장사(長沙)로 내려와 한현의 부하가 되었다. 유비를 만나기 전에는 크게 부각되는 장수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보력이 뛰어난 제갈공명은 황충을 알고 있었다. 한현을 치러가는 관우한테 한마디 한다.

“황충은 지금 나이 육순에 가깝지만 아직도 만 사람을 당해낼 만한 용맹이 있으니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관우 장군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셔야 할 겁니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고작 오백 명을 거느리고 장사로 출전했다.

“거기 오는 장수가 황충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 감히 우리 지역을 침범하는가!”

“하하하, 특별히 너의 목을 베러 왔다.”

관우의 청룡도와 황충의 칼이 햇빛을 받아 번득이고, 강력한 굉음을 내며 부딪친다. 양 진영이 숨을 죽이고 명장의 싸움을 지켜보는 가운데 백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다음날 둘은 또 싸웠다. 역시 승부가 나지 않는다. 관우는 오늘 타도계(拖刀計, 도망가다가 말을 돌리면서 치는 기술)로 결판을 내려 했다. 오십 합을 싸우다가 힘이 부치는 듯 도망가기 시작했다. 타도계를 쓰려는 순간, 황충이 탄 말의 앞다리가 삐어버렸다. 황충은 낙마했다.

“나는 비겁하게 낙마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살려줄 테니 말을 바꿔 타고 나와서 다시 싸워보자!”

황충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한현이 말했다.

“장군은 명사수인데 왜 활을 쏘지 않은 겁니까?”

“내일 쏘겠습니다. 지는 척하고 도망 오다가 다리 앞으로 유인해서 쏘겠습니다.”

다음날 둘은 다시 만났다. 삼십 합이 넘도록 결판이 나지 않았다. 황충은 일부러 지는 척하면서 관우를 유인했다. 이제 활을 쏴야 한다. 그러나 첫발에서는 빈 시위만 당겼다. 시위 소리를 들은 관우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황충은 이번엔 시위에 화살을 얹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관우의 투구 끈을 맞췄다. 전날의 은혜를 이렇게 갚은 것이다. 황충 역시 정정당당한 사람이었다.

이 일로 인해 한현은 황충의 죄를 물어 처형하려 했다. 이때 한현의 또 다른 수하 장수 위연이 한현을 죽이고, 황충을 구해낸 다음 관우에게 항복을 했다. 그러나 황충은 관우한테 항복하지 않고 집에서 칩거하다 이후 유비가 직접 찾아가서 성심으로 설득하니 그제야 항복해서 유비의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황충은 관우와 대등하게 싸웠지만, 관우가 보기에 황충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고, 출신도 보잘것없었다. 한 지역 태수의 수하 장수에 불과했으니까.

하후연을 죽이고, 조자룡에게 신세를 지다

황충 역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황충은 출전할 때마다 늘 선봉에 서고자 했고, 공을 세워 변방에서 중심으로 다가가려 했다. 황충은 유비가 한중왕이 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첫 번째 상대는 조조가 자랑하는 일류장수 장합이었다. 제갈공명은 일부러 황충의 아픈 데를 찔렀다.

“장군께서는 연세가 많아서 장합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 비록 늙었지만, 두 팔을 벌리면 쌀 세 가마 무게의 활을 당길 수 있고, 온몸으로는 천근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제가 장합 따위를 못 이길 것 같습니까!”

유비는 황충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출전을 허락했다. 황충은 또 한 명의 늙은 장수 엄안을 자신의 부장으로 삼아 출전했다. 황충은 용맹뿐만 아니라 지모도 상당한 장수였다. 엄안을 시켜 작은 길로 가서 장합의 배후에 매복을 하도록 하고 자신은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장합은 과연 상대의 장수가 늙은 황충인 걸 보자 코웃음을 쳤다.

“너희들 진영엔 참 사람도 없나 보구나. 늙은 것이 무슨 염치로 싸우러 왔느냐. 철면피로구나. 하하하.”

“어린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네 놈이 내가 늙었다고 업신여기는구나. 내 손에 있는 이 보검은 늙지 않았다!”

장합의 창과 황충의 칼이 맞붙었다. 이십여 합에 승부가 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장합 진영의 배후에서 엄안의 군대가 돌격해 들어왔다. 이 싸움에서 혼쭐이 난 장합은 다시는 황충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여전히 황충을 무시했다.

황충은 이번엔 교병계(驕兵計, 적군을 교만하게 만드는 계책)를 썼다. 사흘 동안 계속해서 일부러 패했다. 장합은 이 꾀를 간파하고 속지 말라 했지만, 패장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조조군은 사흘을 연속으로 이겼기 때문에 군기가 느슨해졌다. 황충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서 조조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 싸움에서 조조의 장수 하후덕과 한호가 죽었고, 조조는 식량보급 거점을 잃었다.

황충의 다음 상대는 장합과 같은 일류장수 하후연이었다. 제갈공명은 이번엔 진지하게 황충을 말렸다.

“제 나이 아직 칠십이 되지 않았습니다. 늙지 않았습니다. 군사께서는 저를 늙었다 하시는데, 이번엔 부장을 데려가지 않고 오직 본진의 군사 삼천 명만 거느리고 가서 하후연의 목을 베겠습니다!”

한편 조조는 아군의 패전 소식을 듣고 직접 사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한중을 향해 출발했다. 하후연은 조조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 어서 빨리 황충을 잡아서 공을 세우고 싶었다. 황충을 아는 장합이 만류했지만 하후연은 기어코 출전을 했다. 하후연과 황충은 역시 일류장수였다. 맞서 싸운 지 이십여 합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양 진영의 군사들은 자신의 대장을 큰 소리로 응원한다. 이때 갑자기 하후연의 진에서 퇴각을 알리는 징을 친다. 황충의 군대가 사방을 포위했기 때문이었다. 장합이 말했다.

“상대는 지금 우리 진영의 허실을 모두 다 보고 있습니다.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후연은 용맹하지만 경솔한 사람이었다.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황충한테 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황충의 군대는 반나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자연스레 하후연 진영의 군기가 느슨해졌다. 황충의 군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일어났다. 조조가 자랑하는 일류장수 하후연은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황충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드디어 황충은 마지막 상대인 조조를 만났다. 제갈공명이 말했다.

“조조는 하후연 따위와 비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황충은 기어이 가겠다고 우긴다.

“그렇다면 이번엔 조자룡 장군과 함께 가십시오.”

황충은 한 번 상대한 적이 있는 장합과 맞붙었다. 일류장수답게 둘의 싸움은 팽팽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 싸움의 배후에는 조조가 있었다. 조조는 재빨리 명령을 내려 황충을 사방에서 포위해 버렸다. 조조의 장수 서황과 문빙이 장합과 합세하여 황충을 압박해왔다. 군사 수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해서 황충은 목숨을 잃을 위기를 맞이했다.

조자룡은 황충이 돌아오지 않자 애가 탔다.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조조의 본진으로 진입했다. 조조군은 조자룡이 오는 걸 보고는 급하게 막아선다. 조자룡은 닥치는 대로 조조군을 베면서 더 깊숙이 들어간다.

“우리 황장군은 어디에 있느냐!”

“푸하하. 황장군? 황충이고 메뚜기고 너희 촉나라 병사들은 모조리 다 죽었다. 하하하.”

조자룡의 눈에 불이 붙었다.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돌격해 들어간다. 멀리서 보니 황충은 서황과 장합의 주력부대에 포위되어있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내 앞길을 막는 놈은 모조리 죽는다!”

명사수, 화살에 맞다

마지막 길을 떠난다. 황충은 유비의 오나라 정벌에 참전했다. 첫 싸움에서 관우와 장비의 아들이 공을 세우자 유비는 이 둘을 치하했다.

“옛날 나를 도왔던 장수들은 이미 늙어 쓸 수가 없게 되어 참으로 한심하다 여겼는데 이제 우리 두 조카가 이처럼 용맹하니 손권을 치는 데 아무 염려가 없겠구나.”

황충은 남몰래 부하 대여섯 명만 데리고 아군의 전초기지로 향했다.

“연로하신 장군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나는 지금껏 부지런함과 정직함으로 주상을 섬겨왔소. 지금 내 나이 일흔이 되었지만, 아직도 한 끼에 고기 열 근을 먹고, 쌀 두 섬 무게만큼 팽팽한 활을 당길 수 있소. 그리고 천리마를 타는 걸 보더라도 나더러 늙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제 주상께서 ‘전에 쓰던 사람들은 늙어서 쓸 곳이 없다’고 하셨소. 나 이제 손권의 군대와 싸워서 적장의 목을 베어 내 솜씨가 늙었는지 아닌지 한 번 결판을 내 볼 작정이오!”

이 싸움에서 황충은 오나라 장수 마충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삼국지 최고의 명사수 중 한 명인 황충이 화살에 맞았다. 황충은 늘 이렇게 전장의 중심에서 앞서 싸웠고, 그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황충, 조조를 넘지는 못했지만, 장합을 곤경에 빠뜨렸고, 하후연을 죽였다. 관우와 대등하게 싸우기도 했다. 오호대장이 되기에 충분한 실력을 보여준 셈이다. 황충은 모든 싸움에서 최선을 다했고, 솔선하여 선봉에 서려고 했다. 성품은 충직했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태도로 일생을 살았다. 은혜를 갚는 의리도 있었다. 호승심이 강한 것이 약간의 흠결이라 하겠지만, 이것은 장수로서 지녀야 할 자세이기도 하고, 더구나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태도가 아닐까 한다.

● 정범구(鄭範九, 1954 - )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 중부 4군(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을 지키고 있던 정범구에게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18대 보궐선거에서 정범구에게 졌던 경대수였다. 이 싸움은 경대수가 공격을 하면 정범구가 방어를 하는 형세로 이루어졌다.

“우리 중부 4군은 지난 8년간 민주당 국회의원의 실정 탓에 예산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있는 사업이 많다. …… 민주당 국회의원의 실정을 제대로 알리겠다. …… 정체된 지역 현안이 어떤 것인지, 정치적 구호만을 외치는 선동 정치가 얼마나 국민의 삶을 병들게 하는지를 군민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2014. 4. 8 오마이뉴스>

경대수는 정범구가 ‘야당 소속’이므로 예산을 따기 어렵다는 비교적 고전적인 수법으로 공세를 폈다. 정범구도 가만있지 않았다.

“음성과 괴산의 가장 큰 현안이었던 국도 37번 확·포장이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확정돼 첫 삽 뜰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음성군의 국지도 49호선 금고-비산, 진천군의 국도 21호선 도계-진천 예산도 확보했다……오랫동안 음성군 원남면 주민을 괴롭혔던 공수부대 전술강하훈련장 조성을 백지화시킨 것도 잊을 수 없다.”<2014. 4. 8 오마이뉴스>

얼핏 보기만 해도 경대수의 공격은 묵직한 청룡도와 같고, 정범구의 방어적 공격은 관우의 투구 끈 정도를 맞추는 정도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대수가 53.6%를 얻어서 46.3%를 얻는 데 그친 정범구를 7%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정범구는 경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1975), 이후 독일로 건너가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1990),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산 사람이었다.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6대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될 때까지 경희대·충남대·한남대 등에서 강사생활을 했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CBS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1998년에는 KBS1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 KBS 2TV “정범구의 세상읽기”를 진행했다.

이 시기의 활약 덕분에 일반에게 정범구는 정치인보다는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화려한 이력을 지녔지만, 정치권의 변방에 있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조용히(?) 사는 사람을 정치권의 중심으로 인도한 유비와 같은 사람은 이 시대의 거목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유비가 황충을 찾아간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 6일 아침 8시 아침 식사 자리에 ‘방송인’ 정범구를 초대했다.

“내가 정 박사보다 나이는 많지만, 개혁에 대한 열정은 정 박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범구의 어떤 면을 보고 그를 험한 정치판으로 인도했을까. 이제 황충과 같은 정범구의 일관성 있는 행보와 강한 전투력을 확인해 봐야겠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정범구는 백면서생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늘 민감한 이슈의 가운데에 서서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기 시작했다.

정범구는 2013년 정계은퇴 선언을 하기 전까지 모두 네 차례 선거에 출마해서 두 번 당선되고 두 번 낙선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던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고양시 일산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창당에 강력히 항의하며 민주당에 남았고, 출마하지 않았다. 이 때 잠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총재를 도우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으로 돌아와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에게 패배했다. 이듬해 2009년 제18대 총선 재보궐에서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지역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정범구는 네 차례 선거 모두 명칭에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늘 민주당에 속해 있었다.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김대중’이 있었던 셈이다.

고군분투

이래서 정범구의 첫 번째 투쟁 상대는 적군이 아닌 아군이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이 분열되어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것이다. 정범구는 이때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다. 결국은 같은 편이 되는 관우와 황충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처럼 정범구는 옛 동지들에게 활을 겨눌 수밖에 없게 됐다.

“근데 노무현을 위시로 한 신당이라고 하는 건, 정치를 평론가 수준으로 해. 신문에 뭐 나오고 뭐고…… 그런 정치는 난 못하겠어. 정치라는 게 사회적 역할분담인데, 아 그런 정치 누가 못하겠어. …… 내 분노는 이런 거야. 아주 무책임하고, 정말 정치를 평론처럼. 그럼 나가서 다들 평론에 종사하면 되잖아. …… 왜, 실제로 많은 권한을 갖고 있고 우리 사회의 소스들을 분배해야 되고 사회를 정리하고 통합해내야 되는 권력을 가진 친구들이 이렇게 무책임한가. 분열을 조장하고. 분열도 무슨 적대세력간의 분열이 아니라, 비교적 그래도 동질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집단에서 분열을 조장해서 좋을 게 뭐냐 이거지.”<2003. 10. 딴지인터뷰>

자연스레 노무현 대통령과도 대립하게 되었다.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현안이 있고 이를 풀어가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때보다 돈독한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지금이야말로 미국이 협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파병 부대의 안전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도록 국방부에서 계획을 잘 세울 것이다.”<2003. 12. 3. 뉴시스>

정범구는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결정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라크의 치안이 갈수록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투병 중심의 부대를 재건부대로 속여 추가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 정통평화세력인 민주당은 명분 없는 전쟁인 이라크 전에 전투병을 보내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2004. 2. 8. 연합뉴스>

이외에도 정범구는 한미 FTA를 반대했고,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에도 크게 반발했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과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정범구에게 있어 유비는 김대중이었고 민주당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 오늘에야 눈물이 났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다고 나선 수많은 시민들이 찾은 대한문 앞에 당신은 한그루 소나무와 함께 활짝 웃고 있었는데,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영정을 바라보는 문상객들의 눈빛이 너무 깊고 슬퍼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정범구, ‘오늘에야 눈물이 납니다’>

정범구는 마침내 언제나 평행선을 유지할 것만 같던, 평생 활을 쏴야 할 것 같던 옛 동료와 이렇게 눈물로 화해했다.

이후로부터는 적군을 향해 활을 겨누기 시작했다. 2009년 4월, 정범구는 제18대 총선 재보궐에서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지역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 시기의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공약이었던 세종시로의 수도이전 문제를 원안대로 하지 않고 수정하려고 시도했다. 2010년 대정부 질문에서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발전(안)이 껍데기가 아니라 원안이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부 의원들께서는 충청지역에서는 발전(안)을 껍데기라고 하고, 또 타 지역에 가서는 발전(안) 때문에 세종시한테 다 뺏긴다고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정범구는 강력하게 반박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행정중심 복합도시 세종시는 미래와의 약속입니다. 말라 비틀어져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는 비수도권을 살려서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키우는 미래지향적 발전 전략입니다. …… 국회를 세종시로 옮깁시다. 전국의 각 지역을 골고루 대표하는 우리 국회의원들부터 국토 균형 발전의 상징이 될 세종시로 국회를 옮깁시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정범구의 외침은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건 ‘세종시’였지만, 이 안에는 우리나라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수도권, 그 중에서도 ‘강남’의 기득권을 향한 화살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2011년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구제역 파동’이 일어났다. 이 때 340만 마리의 가축이 생매장 됐고, 방역과정에서 165명이 부상당했으며, 공무원 7명과 군인 1명이 순직했다. 이 시기의 대통령도 이명박이었다.

“(정부의) 해당 과장은 ‘지자체에 방역 책임이 있다’ 이렇게 미루고, 도대체 이 정권은 일은 터지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괴담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정부 여당이 이런 괴담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건 아닌가도 한 번 반성해 봐야 합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지난 21일 이 대표 발언 자리에서 구제역 책임을 일부 축산 농가의 책임으로 돌리더니, 그 하루 전날인 20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려고 이런 말 한다는 이야기 들을까 봐 조심스럽지만, 외국산 쇠고기가 맛없다는 말도 다 틀린 말이다’……지금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일부러 구제역을 잡고 있지 않는다는 이런 소문 들어 보셨어요?”<이상 2011. 2. 24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구제역 파동을 이야기하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생긴다. 2015년 전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어떤 식으로 기록에 남을 것인가.

정범구는 다시 활을 잡아야 한다 

서두에 밝혔듯이 정범구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정범구는 코스타리카로 날아가 그곳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며 유명 작가 에프라임 키숀의 풍자소설 『닭장 속의 여우』, 랄프 스쿠반의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범구는 현실정치와 많은 거리를 두고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정치에서 눈을 떼지도, 관심을 끊지도 않았다. 

“어설픈 쇼하지 말고……새누리당이 조금 던져주는 권력의 맛에 해롱거리지 마라.……300명 가까운 생명들이 산 채로 수장됐는데도 아무도 정치권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이 나라. 여기에서 과연 야당의 책임은 없는 거냐?……싸우려면 제발 좀 치열하게,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싸워 달라. 여러분들 가슴에 달린 배지는 여러분의 ‘입신영달’을 위해 국민들이 달아준 것이 아니지 않느냐! 제발 하는 척이 아니라 피 터지게 한번 싸워 달라!……국가는 개조의 대상이 아니다. 개조해야 할 것은 탐욕과 무지로 가득 찬 기득권 세력의 머릿속이다.”<2014. 6. 10 한겨레신문>

정범구는 주저 없이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말한다. 잠시 민주세력이 ‘주류’가 되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어떤 사안을 만나든 당리당략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라 소신껏 움직였다. 그가 주군으로 삼은 사람은 김대중이었고, 동시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야 할’ 국민이었다. 이처럼 소신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는 점, 물을 만나자 장수의 투구를 쓰고 활약했던 점, 주군을 향한 변치 않는 충직함과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오호대장 황충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황충은 ‘칠십이 넘지 않았으니 늙지 않았다. 하후연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외쳤다. 정범구는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올해 만 63세니 아직 칠십이 되지도 않았다. 황충과 같은 호승심을 지닌 인물은 아니지만, 그에 필적할 정의감과 소신, 강한 전투력을 소유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는 끈기가 있으며, 언행에 기품이 있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이 시기, 정치권에는 분명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동시에 식견이 넓고 경험이 풍부한 노장도 반드시 필요하다. 신구조화를 이루고, 전열에 순서가 있어야 여전히 나라를 좌지우지할 힘을 지니고 있는 수구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 정권 교체를 했지만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기 어렵고, 해결해야 할 일이 도처에 산처럼 쌓여 있다. 정범구는 이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짐작한다. 정범구는 다시 활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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