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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어떻게 노약자석을 빼앗겼나

기사승인 2017.08.23  15: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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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하철에 처음으로 노약자석이 생겼을 때 말들이 많았다. 노약자석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부터, 오히려 지정석이 사람사이를 갈라놓아 무정한 사회분위기가 고착화 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정작 노약자석이 만들어지고 나서 생긴 소란은 다른 것이었다. 노약자석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법에 부칙으로 들어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근거해 시행된다. 법률 이름만으로 충분히 짐작하듯이 노약자석은 노인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노약자란 늙거나 약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고, 교통수단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교통약자들을 일컬은 것이다. 하지만 약자 이야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세대간 갈등만이 두드러졌다.

외모로 노령을 짐작 할 수 있는 노인들을 제외하곤 겉으로 보기에 누가 약자인지 알 수 없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장애나 질병이 눈으로 확인 되지 않는 젊은 사람들, 임신 초기의 여성들은 자신이 약자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단지 주름과 흰 머리칼만으로도 좌석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노인들 앞에서 그들은 또 다른 약자였다.

여기에 노인을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는 관습이 내려오던 사회가 서서히 개인 위주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도 한 몫 했다. 피곤한 젊은 직장인이 몸상태가 좋지 않아 앉았다간, 연령과 상관 없이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로부터 예의 없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 갈등이 사회문제로 커진 것은 비난을 넘어선 노인들의 폭력 때문이었다. 노인이 청년에게 욕을 하는 것은 그나마 나은 축에 든다. 인터넷에선 뺨을 맞고 발길에 차였다는 경험담도 심심치 않게 있다. 급기야 노약자석에 앉은 임신한 여성이 노인에게 폭행 당한 사건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노약자석에 앉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퍼져 나가자, 그 자리는 거의 완벽하게 비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교통약자를 위해 가급적이면 좌석 이용을 삼가자는 정도의 취지였는데, 노인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해법으로 비워지게 된 것이다. 노인을 제외한 교통약자들은 폭력의 위세 때문에 노약자석을 빼앗겼다. 본래의 법 제정 의도는 사라지고 갈등을 상징하는 좌석만이 남았다. 이런 현상은 폭력이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현실에선 법 보다 주먹이 가까웠다.

최근에는 사회일각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겠다는 입장과, 미리 비워 두자는 입장이 부딪히는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임산부가 상대방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게 쟁점이다. 가뜩이나 노약자석 봉변이 널리 학습된 상황에서, 각박한 지하철 민심을 자극했다가 소란이 생기면 임산부는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여성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위축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말싸움 조차 꺼려진다.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의외로 쉽다. 임산부들이 일부 노인들처럼 욕하고 때리고 싸우면 된다. 몇 명의 임산부들이 지하철 안에서 난동을 부려 이기기 시작하면 그 자리는 노약자석처럼 자연스레 비워질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을 잘 안다. 임신하지 않은 여성들이더라도 그렇게 싸워 이기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멀쩡하게 비어 있는 노약자석을 두고도 앉지 못하게 된 사람들 입장에선 그나마 빈 임산부 배려석마저 이용 말라는 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임산부가 총과 칼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위협한다면? 아마 임산부 배려석을 비우는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정착될 것이다. 노약자석도 그렇게 전리품이 됐으니까. 이 상상은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우리사회의 폭력적 위계문화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노약자석을 어떻게 빼앗겼는지는 덮어둔 채 남은 자리를 두고 임산부와 날을 세우는 것은 임산부가 느끼는 폭력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 외면을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불러야 하나.

노인들이라고 해서 비워진 노약자석이 마냥 좋지는 않을터다. 상식적이고 예의를 갖춘 대개의 노인들로선 자신이 앉은 자리에 쏟아지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노인들에 의해 평범한 노인들 마저 노약자석을 당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마음 속 권리를 빼앗겼다. 전연령대의 우리 모두는 한 량에 불과 12개 밖에 안되는 자리의 공공성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밀려난 임산부들은 남은 공간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결과만 보면 이들이 교통최약자다.

이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임신한 여성들은 임산부 배려석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 기대를 접는 게 현실적이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폭력의 위계에 기대는 문화를 스스로 바꿔 나가지 않는 이상, 임산부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모성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마치 우리 모두가 노약자석을 빼앗겼던 것처럼.

김종현 칼럼니스트 zodiakus@gmail.com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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