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형 작가 <사진제공=왕의서재>

『삼국지』에 나오는 말인데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꽤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계륵(鷄肋)이다. ‘닭갈비’라고 풀이하는데, 먹으려니 먹을 게 없고, 버리려니 아까운 부위라고 한다. 적극적으로 나서봐야 이익이 크지 않고, 그렇다고 그만두기엔 아까운 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번 편에서 살펴 볼 사람은 ‘계륵’이야기의 주인공인 양수(楊修, 175-219)다. 양수는 조조 진영의 참모이면서 당대에 이름난 재사(才士, 재주가 뛰어난 선비)였다. 조조는 양수의 재주를 높이 사면서도 양수가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경계했다. 거기에 양수가 자신의 셋째 아들 조식의 뒤를 봐주면서, 직간접적으로 왕위 계승 문제에 간여하는 것을 꺼렸다. 끝내 조조는 기회를 엿보다가 꼬투리를 잡아 양수를 제거했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계륵’ 때문에 양수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후대 사람들은 양수가 지나치게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 반해 성품이 경박하고 행동은 경솔하여 조조의 미움을 받아 죽었다고 하거나, 정치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했다고 한다. 둘 모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양수는 남들보다 똑똑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동형(1976 - )은 수많은 청취자의 환호를 받았던 팟캐스트 방송 ‘이작가와 이박사의 이이제이’ 진행자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이동형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이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현재에도 작가로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동형은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서인지 ‘이이제이’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보여주었는데, 주로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대중은 이동형의 직설적이면서 쉬운, 그러면서도 탄탄한 식견을 바탕으로 한 분석에 환호했고, 급기야 유무명의 정치인들까지 이동형과 친분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동형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첫 번째 책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여섯 권을 집필했다. 이를 보면서 이동형이 현실 정치에 뛰어 들더라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동형 자신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정치권에서) 나를 데려다 쓰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재주를 믿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동형은 양수와 같은 뛰어난 재주, 상대의 속을 꿰뚫는 직관, 직관의 근거가 되는 분석력, 청산유수처럼 거침없는 언변, 무엇보다 자신을 믿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 양수(楊修, 175-219)

30리를 앞선 지혜

219년, 유비는 조조의 지역인 한중(漢中)을 공격했다. 조조는 믿었던 장수인 장합이 패하자 하후돈을 선봉장으로 삼고 한중으로 진격했다. 조조는 도중에 명망 있는 학자 채옹(蔡邕)의 딸 채염(蔡琰)의 집을 지나게 됐다. 조조는 채옹이 살아 있을 때 가깝게 지냈고, 채염은 예전에 오랑캐한테 잡혀 간 적이 있었는데 조조가 사람을 보내 돈을 주고 다시 중원으로 데리고 오게 했다. 이런 사연이 있으므로 조조는 행군을 멈추고 채염과 잠시 환담을 나눈다.

조조는 집을 둘러보다가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족자를 발견했다.

“황견유부(黃絹幼婦), 외손제구(外孫虀臼)”

조조는 아무리 뜯어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채염한테 뜻을 물어봤다.

“아버지가 쓰신 글이긴 한데 저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도 풀이를 못하는 가운데 양수가 나선다.

“저는 이미 풀이했습니다.”

순간 조조는 호승심이 발동했다. 양수한테 밀리고 싶지 않았다.

“이보게. 아직 말 하지 말게. 나도 좀 더 생각을 해 보겠네.”

조조 일행은 채염과 작별하고 다시 행군을 하기 시작했다. 삼십 리 정도 갔을 때, 조조는 저 글을 풀이해 냈다. 조조는 자기가 생각한 답을 적어 놓고는 양수한테 풀이를 해 보라고 했다.

“황견은 ‘빛깔이 있는 실’입니다. 빛 색(色)에 실 사(絲)가 되죠. 합하면 뛰어날 절(絶)이 됩니다. 유부는 ‘어린 여자’입니다. 어릴 소(少)에 여자 녀(女)죠. 묘할 묘(妙)가 됩니다. 외손은 ‘딸의 아들’이죠. 딸 녀(女)에 아들 자(子)입니다. 그럼 좋을 호(好)가 되고요. 제구는 ‘매운 음식을 담는’그릇입니다. 받을 수(受)에 매울 신(辛)이므로 말씀 사(辭)가 됩니다. 이를 다 합하면 절묘호사(絶妙好辭), 즉 ‘절묘하고 좋은 글’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조조도 이렇게 풀이를 해 놓고 있었다.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재주가 자네만 못하다. 나는 삼십 리를 와서야 알았는데….”

양수의 지혜가 조조보다 삼십 리를 앞서 있는 셈이다. ‘지혜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삼십 리(유지무지교삼십리(有智無智較三十里)’라는 불교의 말과 유사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양수는 ‘계륵’ 사건 때문에 죽는다. 소설 『삼국지』에는 양수가 죽은 뒤에 생전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다. 모두 양수의 ‘재치’와 관련된 이야기다. 한 가지만 더 읽어보자.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다. 사람을 시켜 화원을 만들었다. 조조는 화원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활(活)’이라고 써 놓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조조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양수가 그것을 보더니 웃는다.

“문(門)에 활(活)을 써 놨으니 넓을 ‘활(闊)’이군요. 위왕께선 문이 너무 넓다고 하신 것이니, 문을 좁게 만들어 보세요.”

사람들은 양수의 말을 듣고 문을 좁게 만들고 난 뒤에 조조를 청했다. 조조는 고친 문을 보더니 매우 기뻐했다.

“누가 내 의중을 짐작하고 이렇게 고치라고 했는가?”

“주부(主簿)인 양수가 말해 주었습니다.”

“아, 양수는 참으로 천재로구나.”

계륵이 앗아간 목숨

한중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조조는 유비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적장 마초가 무서워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쉽게 회군할 수도 없었다. 유비한테 조롱당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조조는 얼른 결단을 하지 못했다. 때마침 밥상이 나왔다. 밥상엔 닭국이 놓여 있었다. 조조는 국을 먹다가 ‘계륵(鷄肋, 닭갈비)’을 보게 됐다. 분명 살이 있긴 한데 막상 먹을 건 없고, 그렇다고 남을 주자니 아까운 게 계륵이다. 조조는 속으로 탄식을 했다.

‘이번 싸움은 이 계륵하고 비슷하구나.’

이 때 하후돈이 조조를 뵈러 왔다.

“전하, 오늘 밤 암호는 무엇으로 할까요?”

조조의 머릿속은 온통 계륵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후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중얼 거린다.

“계륵, 계륵.”

하후돈은 이게 암호인 줄 착각을 하고는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오늘의 암호는 계륵이다.”

양수는 이 말을 듣더니 자신의 근무지로 가서 군사들한테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이 소식은 하후돈한테 전해졌다. 하후돈은 급히 양수의 진으로 달려갔다.

“위왕께선 이 싸움의 형세가 마치 계륵같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버리려니 아깝고, 지키고 있어도 소득이 없다고 보시는 거죠. 내일이 되면 회군 명령을 내릴 겁니다. 미리 준비를 해 주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짐을 싸라고 했습니다.”

하후돈은 양수의 말을 듣고 크게 감탄했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와서 군사들에게 철수 준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조조는 심란해 하면서 진영을 순찰하고 다니다가 하후돈의 군사들이 짐을 싸는 모양을 봤다. 조조는 자초지종을 듣고 크게 성을 냈다. 당장 양수를 불러들였다.

“네 이놈! 네 어찌 말을 함부로 만들어 내서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느냐! 여봐라! 양수를 끌어내어 목을 베고, 효수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를 징계하라!”

이것이 ‘계륵’이야기의 대강인데, 이 일화는 범엽(范曄, 398-445)이 쓴 『후한서(後漢書)』에 소개되어 있다. 『후한서』에는 양수만이 조조의 말을 알아 들었고, 조조는 군대를 철수 했다고 밝혀 놓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소설 『삼국지』에 수록되어 있다.

양수의 재주에는 죄가 없다

살펴보았듯 양수는 재치 있고, 남의 속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자부심이 강한 최고 권력자 조조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죄로 죽임을 당했다. 소설 『삼국지』에는 조조가 양수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샘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조조는 셋째 아들 조식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조식의 식견이 양수한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양수를 꺼렸다.

한 가지 더 있다. 양수의 외삼촌은 조조와 적대관계에 있던 원술이었다. 이래서 조조는 처음에 한나라 황제인 헌제를 차지하고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양수의 아버지인 양표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다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기도 했다. 이래저래 양수는 조조의 눈 밖에 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계륵’은 그간의 갈등이 표출되는 계기였을 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양수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한 범엽(范曄, 398-445)은 이렇게 말했다.

“양수는 비록 재주 있는 사람이었으나, 순수한 규범을 변화시켰다.”

‘순수한 규범’은 유교적인 예교(禮敎)를 가리키고, ‘변화시켰다’는 말은 ‘유지해야 할 것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양수는 재능이 있으나 인품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평가를 수용하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현재에도 이처럼 인품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양수와 같이 재주가 있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양수의 죽음을 ‘조조의 시샘’이나 ‘양수의 정치적 배경’에 놓고 보기 보다는 이 사람의 ‘경박한 인품’이나 ‘지나치게 뛰어난 재주’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있지 않은가 한다. 과연 이게 온당한 시각이고, 평가인가? 양수의 재주에는 죄가 없다.

▲ 이동형 작가 <사진제공=왕의서재>

● 이동형(1976 - ) 작가

‘내가 해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 7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이작가와 이박사의 이이제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팟캐스트가 등장했다.

“그 방송을 들어봤는데 좀 건방스러운 얘기일 수 있지만 ‘내가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하게 됐고 처음에 현대사를 가지고 또 정치를 엮어서 한 계기는 우리 현대사가 많이 뒤틀려 있지 않습니까? 이런 걸 제대로 알려주면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것 때문에 주제는 현대사로 잡았던 것이죠.” <2017. 4. 9. 노컷뉴스>

‘내가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 속에서 이동형의 성정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꼼수다’는 2012년 대선이 끝나면서 막을 내렸지만, ‘이이제이’는 2017년 2월까지 계속 됐다. 이동형의 말대로 ‘이이제이’는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나는 꼼수다’에 필적할만한 인기를 끌었고, 대중은 물론 정치권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동형은 ‘이박사’ 이종우와 ‘세작’ 윤종훈과 함께 300회에 가까운 방송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나 사건을 다뤘는데, 기존의 역사를 다른 프로그램이 다소 딱딱하고, 학술적인 언어를 사용했음에 반해 이동형은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써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다. 심지어 비속어를 쓰기도 했는데, 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울러 이동형은 개별 사건을 해석할 때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강하게 표현했으므로 현대사 전공자에게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이제이’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관심이 있어도 선뜻 다가서기 쉽지 않은 분야가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동형의 노력 덕분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으니 이 사람의 공을 적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이동형은 ‘이이제이’를 진행하기 전 ‘도시탈출’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약 100회에 걸쳐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글을 연재했다. 이동형의 첫 저서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은 이 연재물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쉬운 문체로 쓰여 있고, 정리하기 쉽지 않은 근현대사의 곡절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 외에도 『정치과외 1교시』, 『와주테이의 박쥐들』 등의 정치 평론서를 썼고, 근래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를 서술한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를 쓰기도 했다.

“사실은 이 분이 갑작스럽게 나온 건 아니고요. 2012년 대선 끝나고 바로 직후에 그 때부터, “반기문, 다음 여당의, 여권에서의 후보는 반기문 일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거든요, 많이 나왔었는데, 지금 갑작스럽게 부상한 건데요, 저는 조금 냉정하게 보면 지금의 상황은 조금 거품이라고 보고요, 조금 빠질 거라고 봅니다. 지금 반기문 사무총장이 정치권 밖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인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정치권에 들어오면 당연히 빠지게 되겠죠.”<2014. 10. 30. 한수진의 SBS 전망대>

이동형의 말대로 반기문은 여권의 후보가 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양강 구도가 가능할 것인가. 양강 구도가 가능하려면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의 후보들이 사퇴를 하거나 한 사람으로 단일화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철수 후보 쪽으로. 그게 가능할 것인가.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 실질적으로 투표는 결국 다자구도 쪽으로 결론이 나지 싶어요. … 안철수 후보가 지금 높은 지지율을 받는 것은 안철수 후보를 좋아해서 찍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문재인이 싫어서 옮겨간 사람들이 더 많다고 보여지거든요.”<2017. 4. 9. 노컷뉴스>

역시 이동형의 말대로 2017년 대선은 다자구도에서 치러졌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이동형의 장기는 ‘정치평론’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계륵’이 되다

이동형은 지난 몇 년간 유력한 정치평론가로 성장했고,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형에게는 날카로운 필력이 있고, 상대가 누구라도 주눅 들지 않고 맞서는 논변이 있다. 이동형은 자신의 재주와 ‘이이제이’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하여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대중에게 정치인을 소개하기도 하고, 각종 정치인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간 이동형의 인지도는 웬만한 정치인보다 높아졌다.

“사실 팟캐스트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방송으로 인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우리는 야권의 모든 후보가 다 소중한 자산이고,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차차기와 차차차기 대선도 있다고 생각해서 타 후보를 비판은 해도 비난은 하지 말자는 입장인데 후보 지지자들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곡절 끝에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냈지만, 유력한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세 명 후보의 지지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이동형 뿐 아니라 적지 않은 평론가들과 시민들이 이들에게 자제를 요구할 만큼 상호 간의 싸움이 치열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을 ‘위험한 일’로 볼 것인가 ‘경쟁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일’로 볼 것인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나는 우선 이동형의 태도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이동형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위험한 일’ 정도로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이동형은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지지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자 2017년 2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이제이’의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무언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다만 나는 이동형의 ‘나는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데 상대는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각 후보의 지지자들 역시 이동형처럼 ‘차차기’와 ‘차차차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수가 하후돈에게 한 말은 결국 옳았지만, 조조한테 죽임을 당했다. 조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양수가 미리 움직여 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동형의 취지와 말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각각 자신의 후보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난하지 마라’는 말은 통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

애초 2017년 12월에 마무리를 하려 했다가 5월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어차피 끝을 낼 방송을 좀 더 빨리 끝낸 셈이지만, 그 마무리가 좋았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한 때 ‘이이제이’를 켜 놓고 잠을 잘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었던 나로서는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이제이’는 ‘계륵’이 되어 버렸다. 이동형은 과감하게 자신이 5년 간 진행한 방송을 ‘계륵’으로 취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다로 가고 있는 강물

『삼국지』의 양수는 불우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양수와 같은 재주를 지닌 이동형은 ‘이이제이’가 없이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간 YTN의 ‘이슈오늘’, MBN의 ‘아궁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현재 JTBC의 ‘사건반장’ SBS 골라듣는 뉴스룸 ‘뭐니볼’, SBS 러브FM ‘한수진의 SBS 전망대’, ‘박영진, 박지선의 명랑특급’ 에 출연하여 특유의 날카로운 논변을 자랑하고 있다. ‘팟캐스트의 유재석’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이제이’ 종방 후에도 몇 개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이로 본다면 이동형은 여전히 수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정치평론가이며 작가라 할 수 있겠다. 앞서 밝힌 것처럼 사람들은 이동형의 대중적이면서 거침없는 언변, 어려운 내용도 쉽게 쓰는 재주를 높이 평가한다. 민감한 이슈에도 민첩하게 대응하며, 예측을 하면 크게 빗나가지도 않는다. 이러한 재주가 오늘의 이동형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라 하겠다. ‘이이제이’를 함께 진행했던 ‘이박사’ 이종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작가를 보면 굉장히 방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보를 볼 줄 안다는 건데, 보통 (정보를) 찾는다 하면 국내자료만 찾거나 전공의 좁은 분야만 해외 것을 참조한다. 그런데 저 친구(이 작가)는 넓은 분야를 외국에서 자료를 찾는다. 실질적으로 객관적 정보는 미국이나 일본에 많은데, 이작가는 일본으로 도피유학 갔을 때 그런 자료를 섭렵했으니…웬만해선 디테일을 이길 수 없다.”<2013. 2. 26. GO발뉴스>

이 사람의 재주 안에 넓이와 깊이가 겸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동형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갖추고 대중과 만나고 있다. 이동형이 팟캐스트를 넘어 지상파 방송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사람이 이동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는데, 이는 이동형이 개별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동형의 주장하는 태도나 주장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동형은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 노력을 통해 재주를 얻었으며, 재주로써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안녕하지 못한 이 나라가 안녕해 지는데 자신의 재주를 보태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라고 하겠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이동형은 1976년 생이다. 비교적 젊은 재사(才士)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 나이만 놓고 보면 평론가로서 작가로서 경험을 쌓으며 앞으로도 더 진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높은 인지도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에서 이동형은 아직 ‘완숙한’ 평론가로 보지 않는다. 이동형은 바다로 가고 있는 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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