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쓴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환급해주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차니·여리 반납하면 50원·100원씩 돌려주던 컵 보증금 제도”

1990년대 들어 국내에 상륙한 카페. 카페가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은 소위 ‘다방커피’라 불리는 제조커피에서 원두커피, 이른바 ‘아메리카노’에 매료됐다. 이를 방증하듯 현재 우리나라는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도, 커피전문점도 매우 많다.

특히 2000년대에 ‘카페 좀 다녔다’ 하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카페 등에서 다 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를 반납하면 각각 100원, 50원을 돌려주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이 제도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 전문점을 상대로 시행됐다. 당시 학생이었던 기자는 이 제도를 꽤 재밌는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타 브랜드의 컵은 회수하지 않아 반드시 그 브랜드의 컵을 돌려줘야 하는 수고로움, 혹은 해당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브랜드에서 컵을 내밀며 당당하게 보증금을 달라고 해 창피함을 느꼈던 적도 있지만. 아마 부모님 세대가 고철이나 빈병 등과 엿을 바꿔먹었다던 기분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왜 생겼을까. 이 배경에 대해 이해하려면 우리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제도)’와 ‘폐기물부담금제도’ 이 두 가지 제도에 주목해야 한다.

식품을 담는 용기는 크게 4가지 재질로 분류된다. 우유 팩 등의 종이팩, 유리병 금속 캔, 그리고 합성플라스틱수지. 이들의 생산자는 환경부가 마련한 EPR제도에 따라 전체 생산량의 일정한 비율 이상을 다시 회수해 재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유리병은 70%를 회수해야 하는데, 유리병을 만드는 업체가 100개의 유리병을 생산했다면 이 중 70개는 다시 회수해 재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종이컵은 EPR제도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안쪽과 바깥쪽 면 모두 플라스틱으로 라미네이팅 돼 있는 우유 팩과는 달리 안쪽면만 라미네이팅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 다 쓴 일회용 컵 ⓒ투데이신문

한편, 플라스틱 컵 생산자는 재활용이 잘 안 되는 플라스틱이나 캔, 병 등의 품목에 대해 생산한 만큼 부담금을 내는 폐기물부담금제도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플라스틱 제품의 매출이 연간 10억원 미만, 혹은 해당 제조업체의 연간 총 매출이 30억원 미만일 경우 부담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지만 일회용 컵은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도 쉽게 생산 가능하다. ‘종이컵’ 혹은 ‘플라스틱 컵’이란 검색어로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수십 개의 판매처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생산이 쉬워 영세 제조업자들이 많고, 이들의 대부분은 폐기물부담금제도에서 제외된다.

즉, 컵의 생산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제제가 없는 것. 물론 컵이 잘 재활용된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재활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화에서 설명했듯 현재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는 1.39%에 불과하다. 분류가 쉽지 않아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이나 매립된 일회용 컵 형제는 점점 쌓여갔다.

▲ 버려진 일회용 종이컵 ⓒ투데이신문

“MB 정부, 컵 보증금 폐지에 이어 종이컵 규제 완화”

이러한 배경에서 2003년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탄생했다. 시행 첫해에는 커피전문점에서 무려 44%의 환불이 이뤄져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컵 회수율은 점차 줄어만 갔다. 보증금과 관련된 비용 문제가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컵 보증금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종이컵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에 이른다. 그전까지는 원칙적으로 음식점이나 학교, 병원, 기숙사 등 식품접객업이나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8년 6월 30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재촉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일회용 종이컵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환경부가 일회용 종이컵을 법적 규제대상에서 제외함에 따라 제재가 이뤄지지 않자 일회용 컵 사용량은 5년 만에 무려 4배가량 급증했다. 회수 없는 무분별한 컵 생산이 불러온 최악의 결과였다.

▲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로부터 수거한 일회용 컵들 ⓒ투데이신문

“환경부, 결국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 조치 마련”

결국 2013년 환경부는 다시 특별 조치를 마련한다. 바로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다. 국가적인 지원은 받지 않지만,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데 동참할 협약업체들을 모집했고 이에 커피전문점 12개 브랜드(파스쿠찌, Javacity,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크리스피 크림 도넛,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커피,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엔제리너스, 카페네스카페, 커피빈)와 패스트푸드점 5개 브랜드(KFC, 롯데리아, 버거킹, 맥도날드, 파파이스)가 뜻을 모았다.

협약업체들은 일회용 컵을 포함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텀블러 등 다회용 컵을 지참한 고객을 대상으로 음료 가격 300원을 할인해줍니다. 스타벅스의 경우에는 컵 회수율을 늘리는 데 동참하고자 다 쓴 일회용 컵 10개를 모아와도 음료값 300원을 할인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또 협약업체들은 매장에서 회수한 일회용품들을 (주)대원리사이클링 등 환경부가 지정한 재활용업체에 재활용을 맡기고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협약업체 중에서도 회수한 컵을 재활용업체에 전달하지 않고 일반 폐기하는 매장도 간혹 있다고 한다. 재활용을 맡기면 그에 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 더구나 소규모 개인 카페나 협약 이후 등장한 프랜차이즈 업체도 많다. 이들의 일회용 컵 회수율 및 재활용률은 협약업체보다 현저히 더딘 편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아직 현황 파악이 끝나지 않았지만, 일회용 컵은 협약업체들만 잘 분리하고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나 협약을 맺지 않은 프랜차이즈 등은 컵 분류를 잘 하지 않고 그냥 폐기해 재활용이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비단 재활용 및 환경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종이컵의 원재료가 되는 최고급 천연펄프의 경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컵과 관련한 비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입 원지 대체 가치는 연간 358억원에 달한다.

아무리 ‘일회용’ 컵이라지만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대목이다.

▲ 다양한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 ⓒ투데이신문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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