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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통합장애 아동 위한 공간 ‘시소’
감각운동발달치료·작업치료 이뤄져

교사 당 하루 평균 6~8명 아이들 보살펴
개개인 상태에 따른 수업 내용 연구 필수

여러 발달 장애 협회와 프로그램 추진하기도
장애 가족 위한 프로그램 트레이너도 준비 중

활동적인 수업 많아 체력적인 부분 가장 힘들어
그래도 성장한 아이들 바라볼 때 가장 보람 느껴

국내 발달장애 지원 시스템 턱없이 부족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보강되길 바라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2호선 홍대입구역에 내려 걷다 보니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지나 한적한 동네에 다다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시소 감각통합상담연구소(이하 시소)의 간판이 점점 가까워졌다.

시소는 감각통합 조절 능력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의 감각운동발달치료 및 작업치료가 이뤄지는 기관이다.

감각통합장애라는 말 자체를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감각통합장애에 대한 개념이 낯설기만 하다. 기자 역시 그랬다. 때문에 이번 취재는 기자에게도,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감각통합장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다소 긴장된 마음을 안고 연구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5층에 내려 시소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쾌하게 청소로 하루를 준비하는 선생님(작업치료사)들이 있었다. 매일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이기 때문에 구석구석 먼지 제거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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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쯤 되자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약속한 시간에 맞춰 연구소의 문을 두드렸다.

시소에 오는 아이들은 앞서 언급했듯 감각통합장애를 겪고 있다. 이들은 스트레스나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능력이 떨어지고 과잉행동이나 주의산만함, 예민함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학습, 발달 등의 측면에서 또래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폐나 발달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 중에는 감각통합장애를 동반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날은 개개인의 상태에 따른 개별 수업(작업치료)이 있는 날이었다. 개별 수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사회성 발달을 위해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 교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져 수업을 진행한다.

시소를 이끌고 있는 지석연 소장과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장 먼저 지훈이(가명·5)를 만나기 위해 1번방에 가기 전 기자는 간단하게 카메라와 수첩, 필기도구만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지 소장은 이번 수업에는 카메라를 두고 가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연령이 어리다 보니 새로운 물건이나 사람을 보면 그것에만 계속 관심을 보이고 집착한다는 것. 기자는 부랴부랴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 어플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해 가지고 들어갔다. 있는 듯 없는 듯 벽이 되면 된다는 지 소장의 당부대로 기자는 조심스럽게 1번방의 문을 열고 사각지대에 몸을 붙였다.

개별 수업시간은 보통 40~50분 정도다. 수업 내용을 연령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영·유아기에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극대화해주고, 청소년기에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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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지훈이는 선생님과 함께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커다란 그네 위에 올라타 뉴욕을 향해 ‘칙칙폭폭’ 달렸다. 기차에서 내려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1번방을 세바퀴 돌고 나서야 파라오에 도착했다. 언뜻 보기에는 어린이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굳이 연구소까지 와서 이런 수업을 받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3세 안팎의 발달장애가 없는 보통의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오만가지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몇 가지 단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 그것들을 가지고 ‘좋아’, ‘안돼’처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이끌어낸다. 여러 아이들을 선생님 한두 명이 돌보는 어린이집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훈이가 한창 신나게 놀고 있을 무렵 마찬가지로 발달장애가 있는 민아(가명·2)가 도착했다. 민아는 엄마가 수업에 함께 참여한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수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민아가 활동하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는 훈련이 되지 않은 것도 함께 수업을 받는 이유 중 하나지만 가정으로 돌아가 엄마가 아이를 어떤 식으로 대하면 좋을지에 대해 일러주는 부모 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단다.

선생님은 민아 옆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줬다. 사과를 들면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코끼리 모형을 가리키면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못해도 50분 동안 10번 이상은 부른 듯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민아가 소리에 반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선생님은 학부모님과 짧은 상담 시간을 갖는다. 민아를 돌보는 함초롬 선생님은 그동안 민아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어머니께 설명했다. 민아가 시소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많이 발달했다는 말에 민아 엄마의 얼굴에도 살며시 미소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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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없는 틈을 타 활동실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1번부터 3번까지 여러 방이 있지만 동굴이나 문을 뚫어둬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돼있었다. 미끄럼틀과 매트를 비스듬히 쌓아 내리막과 오르막을 만들어 놨다. 한쪽에는 하늘 높이 뛸 수 있는 트램펄린이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그네와 갖가지 줄이 매달려져 있었다. 마치 아파트 놀이터를 옮겨놓은 듯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길을 오르고 내리고, 흙을 밟고 만지며 느끼는 여러 가지 감각은 감각통합발달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아이들이 자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때문에 자연을 모티브로 다이내믹하게 구성했다는 것이 지 소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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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 일주일에 한번 있는 회의가 열렸다. 지 소장은 이 시간이 어찌 보면 연구소 선생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 중에 하나라고 했다. 금요일 회의 시간에는 어떤 새로운 아이들이 시소를 찾았는지, 현재 상태는 어느 정돈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선생님들은 본인이 담당하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너 나 할 것 없이 회의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한 공간에서의 개별 수업이나 단체 수업에서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시소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파악을 해두는 편이다.

오후 12시 30분, 바빴던 오전 일과를 끝내고 선생님들이 한숨 돌리는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선생님들은 곧 실습을 끝내고 떠나는 실습생들과 함께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기자도 은근슬쩍 옆에 앉아 숟가락을 얹었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비로소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올해로 시소에서 함께한 지 6년째를 맞이한 함 선생님은 이곳에서 작업치료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고 했다. 요즘 사회 분위기상 첫 직장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란다. 대학교 동기들 가운데는 본인들이 생각했던 작업치료사로서의 모습과 현실이 다르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는 반면에 자신은 공부하면서 꿈꿨던 작업치료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김소연 선생님 역시 그의 말에 공감했다. 김 선생님은 시소에 오기 전 약 1년 정도 재활병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업치료사로서 일을 했다. 김 선생님은 병원에서의 1년보다 시소에서의 1달이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작업치료사의 모습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함 선생님은 일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굳이 꼽자면 체력이라고 했다. 쉬는 시간 없이 수업이 연달아 있을 때는 체력이 바닥난단다. 그런 면에서는 남자 작업치료사가 많은 것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작업치료도 여초 현상이 심한 분야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작업치료사는 ‘She’, 아이는 ‘He’라고 지칭할 정도다. 시소만 하더라도 한승호 선생님이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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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지 소장과 함께 인근 카페로 향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남영 운영위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평범한 주부이기도 한 남영씨는 슬하에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다. 그가 자폐와 관련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다 아들 때문이라고 한다.

남영씨와 지 소장은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PST(Parent Skill Training) 프로그램 도입’과 관련해 회의를 했다. PST란 발달장애아를 기르고 있는 부모에게 포괄적인 양육보호를 전달하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미국 비영리단체인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와 함께 개발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자폐인사랑협회가 함께 PST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장애가 있거나 장애가 있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일정한 교육과 서포트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정한 포맷으로 만든 것이 바로 PST 프로그램이다. 지 소장은 국내에 PST 프로그램이 도입됐을 때 전반적인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는 ‘MT(Master Trainer)’로서 참여하게 됐다. 두 사람은 자폐나 발달장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PST 프로그램의 도입은 상당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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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남영씨와의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연구소에 돌아오자 지 소장이 담당하는 솔지(가명·여·12)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솔지는 자신의 마음 안에 ‘안돼’라는 마음과 ‘이건 받아들여도 돼’라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한다.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룹 활동을 하는 것 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솔지는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구운 가래떡 하나를 들고 수업에 들어온 솔지에게 지 소장은 콩 한쪽도 나눠먹는 거라며 가래떡과 냉장고에 콜라를 선생님들과 나눠먹자고 권유했다. 솔지는 가래떡을 자르기 위한 칼과 접시, 콜라를 따르기 위한 컵을 준비하기 위해 다 함께 탕비실로 향했다. 지 소장은 위험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을 솔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게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솔지는 서툴지만 직접 가래떡을 인원 수대로 자르고 음료를 따랐다. 이때도 지 소장은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권유할 뿐 강요하거나 나서서 돕지 않았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솔지에게 떡을 포크에 찍어 음료와 함께 나눠주는 것이 어떨까 물었다. 하지만 솔지는 그것은 하고 싶지 않다며 지 소장과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는 수용 점수를 건 딜을 제안했다. 수용 점수는 지 소장과 솔지 사이의 일종의 ‘칭찬스티커’와 같은 의미다. 솔지가 원하지 않지만 지 소장의 권유를 수용할 경우 그 대가로 수용점수를 받는다. 10점이 모이면 한번 거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솔지가 수용점수 2점을 획득하고 나서야 우리 모두 고소한 떡과 달콤한 음료를 맛볼 수 있었다.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나이인 솔지는 다이어트 때문에 현미떡을 먹는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미와 다이어트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이어갔다. 기자가 느낀 솔지는 또래에 비해 사용하는 어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시소를 통해 부족한 부분만 채워진다면 후에 본인의 바람대로 충분히 멋진 여군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지 소장이 솔지의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실습생과 솔지, 기자는 편하게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원래는 독신주의자였다는 솔지는 최근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을 보고 배우 박보검에게 마음 홀딱 빼앗겼다고 했다. 박보검의 이상형이 착한 여자라 요즘에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있단다. 여느 사춘기 소녀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에 기자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우리는 박보검과 결혼하는 날 꼭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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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민정이(가명·여·16)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민정이는 반복 학습을 통해 생활 속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도 민정이에게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인생 공부다.

이날은 혼자 머리를 감아보기로 했다. 지 소장의 지도 아래 먼저 샤워기를 들었다. 민정이는 가르쳐주는 만큼 다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앞선 솔지와는 달리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머리에 샴푸를 칠하면 손이 닿기 쉬운 앞과 옆은 잘 감지만 뒤는 옆에서 반복적으로 얘기해주고 짚어줘야만 손을 뻗었다. 다음은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해 머리 말리기에 도전했다. 머리 감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손 닿기 쉬운 부분인 앞과 옆만 계속 말렸다. 때문에 앞머리가 다 마를 때까지 뒷머리의 물기는 촉촉하게 남아있었다. 민정이는 수업 중에 계속해서 ‘미술 하러 가야 한다. 미술 어디서 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실습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엉거주춤하자 지 소장은 민정이의 말에 한 번 휘둘리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 상황에 맞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냈다. 그간 지 소장이 쌓아온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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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모든 수업이 끝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시소 선생님들의 일과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발달 상황을 기록하는 보고서 작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라고 말하는 지 소장의 얼굴은 왠지 행복해 보였다.

연구소에서 보낸 기자의 하루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처음 시소에 올 때 마음은 ‘평범한 사람조차도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라는 왠지 모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컸다. 그런데 시소에서 보낸 9시간이 어쩌면 그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부족함보다는 ‘다르다’고 단정 짓는 세상의 편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돌아가는 길, 밖에서 바라본 지 소장 사무실은 유난히도 환했다. 지금은 또래에 비해 부족하고 서툰 구석이 많은 시소 아이들이지만 꺼질 줄 모르는 지 소장의 열정이라면 언젠가는 누구보다 빛나는 보석이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불씨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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