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진소방서 ⓒ투데이신문

구조팀 신고 중 동물 구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동물 구조하다 위급한 환자 놓칠 경우 안타깝기도

소방관, 시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공무원
불쌍한 것이 아닌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

소방관들이 보람 느끼는 순간 모두 똑같아
‘고생하셨다’는 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지난달 18일, <투데이신문>은 ‘땀으로 쓴 노동일기’ 15번째 이야기로 소방관의 하루를 담기 위해 서울 광진소방서 구조팀을 찾았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밤낮없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구조팀과 함께한 하루는 몸은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오전 8시 30분, 서울 광진소방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다음날 상일동 고덕3단지 재건축단지 일대에서 예정된 지진방재종합훈련 대비 사전 모의 훈련을 위해서다. 광진소방서 소방대원들에게 훈련은 매일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날은 시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을 앞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전날 밤샘근무로 피곤할 법도 하건만 주간 근무인 구조2팀을 제외한 구조팀 모두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훈련에 임했다.

대원들은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는 장비들을 용도별로 가지런히 준비한 후 복장을 갖춰 입었다. 기자에게도 얼굴을 반 정도 가리는 마스크 하나가 주어졌다. 기자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벗어버렸다.

   
▲ 차 아래 깔린 요구조자 구출 작업 ⓒ투데이신문

이날 훈련 내용은 차 아래 깔린 요구조자와 뒷좌석에 갇힌 요구조자를 구출해내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대원들은 차가 움직이지 않도록 앞바퀴에 지지대를 받쳤다. 그리고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각각 로프를 걸어 다시금 단단히 고정시켰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차가 움직일 경우 2차 사고 발생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두개의 뒷바퀴 중앙에 고무튜브를 끼워 넣고 공기를 주입해 요구조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했다. 한껏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튜브 덕분에 차 뒤쪽이 높게 들렸고 요구조자는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다.

   
▲ 뒷좌석에 갇힌 요구조자 구출 작업 ⓒ투데이신문

다음으로 뒷좌석에 갇힌 요구조자를 구출하기에 앞서 지진의 여파로 부러진 나무나 붕괴된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쇠파이프 등이 자동차를 덮친 실제 현장 상황을 비슷하게 연출하기 위해 차 보닛 위에 나무토막을 올려놓은 후 유압 전기톱으로 여러 조각으로 절단해 제거했다. 그런 다음 운전석과 뒷좌석 유리창에 청테이프를 꼼꼼히 붙였다. 창문을 뜯어낼 때 발생하는 분진이 차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구조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원들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드릴을 이용해 유리창을 뚫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 분진이 날리며 기침이 났다. 기자는 벗어던진 마스크를 후다닥 착용했다.

유리창을 뜯어낸 다음에는 유압 절단기를 이용해 운전석과 뒷좌석 문을 분리했다. 이어 차의 윗부분까지 제거한 후에야 요구조자를 구출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작업을 수행하는 데까지는 총 26분이 소요됐다. 물론 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최소한의 과정만 거치지만 훈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기 때문에 차 한 대를 완전히 해체한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이날 “소방서 내에서 이렇게 큰 훈련은 보기 드문 광경”이라며 “운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모든 훈련을 마친 후, 구조팀의 수장인 구조대장들을 중심으로 대원들이 훈련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실전에서 보완해야 할 점을 논의했다. 선선했던 가을 날씨에도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을 만큼 많은 땀을 흘린 대원들은 지칠 만도 하지만 누구 하나 흐트러지는 사람 없이 구조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한복판에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광진소방서 대원들만 있다면 무사히 구조될 것만 같은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오전 시간을 꼬박 지진방재훈련을 준비하는데 보낸 구조팀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소방서 내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기자도 대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보기만 해도 지칠 만큼 고된 훈련 탓인지 먼발치서 구경만 했을 뿐인데도 밥맛이 꿀맛 같았다. 식사를 함께한 구조2팀 강재민 대원은 밥을 먹다가도 신고가 접수되면 버려둔 채 부리나케 뛰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밥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라 다함께 간식을 사 먹곤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기자는 혹시나 출동벨이 울리지 않을까 내심 노심초사하며 식사를 마쳤다.

대원들과 함께했던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2층에 위치한 구조팀 대기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내내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광진소방서에 출동벨이 울렸다.

   
▲ 유기견 구조 출동한 구조2팀 ⓒ투데이신문

“또롱 또롱,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오후 12시 20분경, 구조팀의 출동을 알리는 ‘또롱 또롱’ 소리와 함께 소방서 곳곳에 흩어져있던 대원들이 발 빠르게 계단을 타고 차로 뛰었다.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에서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그들을 뒤쫓았다.

신고 내용은 강아지 한 마리가 며칠째 철창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동물구조협회처럼 유기견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구조대원들까지 나서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이에 구조2팀 김학두 대원은 “생명이 소중한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신고가 접수되면 무조건 출동한다”면서도 “하지만 간혹 동물을 구조하다 정작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를 놓칠 때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구조2팀 박신민 대원이 “동물 구조는 구조대에 접수되는 신고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많은 편이다”라고 거들었다.

2분 남짓 흘렀을까, 대원들은 커다란 뜰채와 케이지를 들고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이동했다. 신고자가 가리킨 곳에는 갑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 탓에 어리둥절해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철창에 갇혀있다는 신고와 달리 강아지는 누군가의 관리를 받고 있는 듯 깨끗한 케이지 안에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동물구조협회에 이송되기 전 구청에서 잠시 돌보고 있던 유기견이었다. “죄송하다”는 신고자에게 대원들은 개의치 않은 듯 상황을 설명해주고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출동한 게 헛걸음이 됐는데 김새거나 화나진 않냐”고 묻자 김학두 대원은 웃으면서 “일인데 화날게 뭐있냐”며 “일이 힘든 건 잠깐이지 늘 즐겁다”고 했다. 진정 소방관이란 직업을 즐기면서 하고 있는 듯 보였다.

   
▲ ⓒ투데이신문

오후 12시 55분경,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이번엔 화재 신고였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재산피해는 물론이고 자칫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기자는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차에 몸을 실었다. 대원들도 이전 출동보다는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방화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무전기를 통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고 이내 대원들은 방화복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차를 돌려 소방서로 되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기자에게 박신민 대원은 “출동 후에도 무전기를 통해 수시로 추가 신고가 접수되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행주에 불이 붙은 경미한 화재라 최소 인력만 남기고 복귀하라는 ‘비처리’ 지시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있는 말인가 싶었다.

화재 신고를 끝으로 구조팀에는 다시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목에는 카메라를 걸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손에는 수첩을 쥐고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 태세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있는 동안 대원들로부터 “소방서에 손님이 찾아오면 유난히도 신고가 없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다. 잠시 긴장을 내려놓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여유로움을 틈타 대기실을 드나드는 대원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구조3팀 이호형 대원은 남들보다 조금 늦은 33살에 소방관이 됐다. 군생활을 의경으로 보냈던 그는 경찰관을 꿈꿨을 법도 한데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신뢰를 받는 소방관을 택했다. 그는 “좀 흔한 얘기긴 하지만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라며 뿌듯해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냐”고 묻자 “안전장비를 모두 착용하기 때문에 와이프는 많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하지만 장모님은 혹시나 딸이 과부가 될 까봐 좀 불안해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함께 출동했던 김학두 대원을 대기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실질적인 소방업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개념을 쌓기 위해 퇴근 후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소방관에게 체력은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나면 운동도 한단다. 일하랴, 공부하랴, 운동하랴 김학두 대원에게 24시간은 턱없이 모자랄 것만 같았다.

   
▲ 구조2팀 배기수 대원 ⓒ투데이신문

구김살 하나 없는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구조2팀 배기수 대원은 ‘나이롱 환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과거 구급팀에서 근무하던 당시 서울 아산병원에서 공항까지 구급차로 데려다 달라는 시민을 만난 적 있다고 했다. 해당 시민은 “소방서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고 운운하며 구급차를 마치 대중교통마냥 이용하려 했단다. 구급차는 상태가 위급한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배기수 대원은 “소방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화를 낼 순 없다”며 “구급차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원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기자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눈 10명이 넘는 대원들이 한목소리로 말한 것이 있다.

“우리 안 불쌍해요”

대원들은 검게 그을린 얼굴, 현장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의 언론에 비치는 소방관의 안타까운 일부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들 스스로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매일매일 즐겁게 일한다며 소방관이 힘든 직업일 순 있지만 동정받을 만큼 결코 불쌍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대원들이 우스갯소리로 던진 “기자님도 우리 불쌍하다고 쓸거예요?”라는 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 오소리 구조 출동한 구조2팀 ⓒ투데이신문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또다시 출동벨이 울렸다. 아쉽지만 하던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재빨리 뛰어 내려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 지하실에 오소리가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야생동물의 경우 사람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어 신고가 사실이라면 빨리 포획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할머니 한분과 그의 딸, 손녀가 잔뜩 겁에 질린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대원들은 신고자가 가리키는 지하실로 들어가 불빛을 비춰가며 오소리가 있을만한 곳을 샅샅이 살펴봤다. 그 순간 재빨리 무언가가 열린 창문틈 사이로 빠져나와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를 본 대원들은 신고자가 본 것은 오소리가 아닌 청설모라고 했다. 복슬복슬한 털 때문에 청설모를 오소리로 오인했던 것. 신고자는 대원을 붙잡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구조2팀 김성훈 대원은 그런 신고자의 마음을 읽은 듯 기자에게 다소 까칠했던 것과 달리 웃는 얼굴로 상황을 정리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4시가 조금 안된 시간, 출동이 없을 때는 쉴 법도 한데 구조팀은 들것 묶기 훈련을 시작했다. 들것에 실려 갈 만큼 위중한 상태인 환자는 다친 위치와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송 시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고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고정 끈을 들고 나선 김성훈 대원의 능숙하고 여유로운 들것 묶기 솜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가 보기에도 놀라웠다.

들것 묶기 훈련을 한참 감상하고 있는데 강재민 대원이 기자를 이끌고 구급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구급팀은 환자를 이송하기 때문에 민원이 들어올 수 있어 기자가 동승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 아쉬웠던 찰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 구급팀 허용구 대원 ⓒ투데이신문

강재민 대원을 따라간 구급팀 사무실에서는 허용구 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96년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정도를 소방서에 몸담은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소방관으로 보낸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그는 안타까운 사고도 많이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아봐야 하루에 2건에 불과했던 자살 사고가 4~5번으로 배로 증가했다. 생의 마지막을 줄에 목을 매단 채 맞이한 그들의 모습은 아무리 험한 꼴을 많이 보는 소방대원일지라도 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잠시 말을 않던 그는 2001년 홍제동 화재 사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의 사고로 순직한 대원 가운데는 허용구 대원의 동기도 있었다. 그는 “다음날 뉴스를 통해서야 사고 소식을 접했다”며 “홍제동 사고는 생각나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갔지만 눈빛은 그날의 안타까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 교대 전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2팀과 구조3팀 ⓒ투데이신문

5시 45분경 어둑어둑 해질 즈음 구조2팀과 구조3팀이 교대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원들은 피로로 뭉친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할 채비를 했다. 원래 교대식은 모든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되지만 앞서 지진방재훈련을 하면서 모든 장비 점검을 마쳤기 때문에 업무를 인수인계 하는 정도의 약식으로 진행됐다. 구조2팀은 길고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귀가했다.

   
▲ 구조3팀 김대환 대원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2015년 서울시 몸짱 소방관대회에서 화려한 식스팩을 선보이며 영광의 1위를 차지한 구조3팀 김대환 대원이었다. 철저한 식단 관리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밥이 수북이 쌓인 그의 식판에 의아했다. 기자가 “그렇게 많이 드셔도 되냐”고 묻자 “저는 먹기 위해 운동하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고 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구조팀 대기실에서 다시 만난 김대환 대원과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바닷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준 소방관을 보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찰나 특수부대를 다녀오면 특채로 소방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볼 만한 경쟁이라고 생각한 그는 특수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자랑스러운 구조대원이 됐다. 김대환 대원은 “구조팀은 운전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며 “때문에 모두가 군대 선후배 사이라 더욱 돈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와 소방관이란 직업의 인연은 더욱 특별했다. 오는 11월 결혼을 앞둔 그의 피앙세도 중부소방서 소속 소방대원이다. 꿈도 사랑도 모두 이룬 김대환 대원이 내심 부러워졌다.

광진소방서의 야간은 비교적 한가했다. 기자는 이호형 대원과 함께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오전에 훈련을 했던 1층으로 향했다.

   
▲ 줄지어 세워진 공기통(좌), 심폐소생술 마네킹 ‘애니’(우) ⓒ투데이신문

출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1층 벽면 한쪽에는 화재 현장에서 대원들의 공기를 책임지는 공기통들이 열 맞춰 세워져있었다. 공기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쉴 경우 45분, 활동량이 많은 현장에서는 약 15분가량 유지된다. 15kg 정도 되는 공기통을 직접 들어보니 힘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자가 들기에도 제법 무게가 나갔다. 방화복 무게와 후덥지근한 화재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건장한 소방관일지라도 꽤 버겁겠다 싶었다.

이형호 대원은 창고에 들어있던 심폐소생술 마네킹 ‘애니’도 꺼내 손수 시범을 보여줬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심폐소생술은 모두 거짓”이라며 “실제 심폐소생술의 경우 7~8cm가 들어갈 정도로 눌러야 하기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구급차 내부 ⓒ투데이신문

다음은 출동이 없어 잠시 주차돼있는 구급차로 향했다. 구급차 내부는 생각보다 굉장히 협소했다. 환자 1명과 구급대원 2명, 보호자까지 탑승하면 답답하리만큼 차 내부가 꽉 찰 듯했다. 공간은 작았지만 시설은 병원 못지않게 각종 의료장비들이 종류별로 구석구석에 잘 갖춰져 있었다. 산소통부터 임산부들을 위한 분만세트, 화상환자를 위한 화상용 키트, 호흡이 곤란한 환자에게 공기를 짜주는 LMA, 각종 약품까지 정말 없는 것 빼고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형호 대원은 “구급차가 내부가 넓으면 좋겠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 않다 보니 좀 더 큰 구급차를 제작하려는 업체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제법 쌀쌀해진 밤공기에 대기실로 돌아가려는데 갑작스럽게 구조팀의 출동벨이 울렸다. 방심하고 있던 터라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다. 신고 내용은 사람이 갑판이 쌓여있는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동과 동시에 비처리 지시로 가던 길을 멈춰야 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무전기 너머 들려오는 ‘비처리’를 용케 알아듣고 “또요”라고 외친 기자에게 김대환 대원은 웃으며 “비처리를 알아들은 거예요”라고 대답을 대신했다.

   
▲ 야식먹는 구조3팀 ⓒ투데이신문

오후 10시 쯤, 평소 밤참을 즐기지 않는 기자지만 평소보다 긴 하루를 보내서인지 배꼽시계가 때아닌 아우성을 쳤다. 때마침 김대환 대원이 탕수육과 떡볶이를 양껏 주문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밤 근무에는 거의 야식을 즐겨먹는다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고, 대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대원들은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맛있는 야식을 즐겼다. 출동할 때의 늠름함과 듬직함은 온데간데없이 아빠와 아는 오빠 같은 친숙한 그들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기자가 돌아갈 시간이 다 돼서야 겨우 구조3팀의 유근성 구조대장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올해로 소방관이 된 지 20년째를 맞이한 그는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구조3팀의 수장이었지만 소방복을 벗으면 평범한 가장이었다. 유근성 구조대장은 “집사람이 아들에게 ‘너 나중에 아빠처럼 힘든 일 하면서 살거야’라고 했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서도 “하나뿐인 아들이 소방관을 하겠다고 하면 위험한 일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말리고 싶다”고 했다.

유근성 구조대장은 소방관들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모두 똑같을 거라고 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매번 목숨을 아끼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의 응원 그뿐이라고 말했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갈 때 즈음 문득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떠올랐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 ⓒ투데이신문

오후 11시, 길고 길었던 광진소방서에서의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광진소방서의 시계는 힘든 줄 모르고 쉼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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