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에서 바라본 조견당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우리 선조들의 건축적 독창성과 인문학적 소양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이 있다. 바로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소재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1호 ‘조견당(照見堂)’이다.

조견당은 현 주인인 김주태(55)씨의 10대조인 김낙배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고 순조 27년인 1827년에 지은 중부지방의 대표적 반가(班家)다. 행랑채와 동별당, 서별당, 바깥 사랑채와 안 사랑채, 안채, 사당 등으로 이뤄졌으며 규모는 120칸에 달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다사다난 세월 속에 대부분이 소실된 조견당은 안채만이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2007년 사랑채를 복원하고 2010년 별채를 신축하는 과정을 거쳤다.

   
▲ 안채에 걸린 조견당 현판ⓒ투데이신문

김종길 가옥(金鍾吉 家屋) 이라고도 불리는 ‘조견당’의 이름 그대로를 풀이하면 ‘밝게 비추어 보는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세상의 진리가 어두워 보이지 않으니 밝게 비추고 보아야 한다’는 반야심경의 첫 수절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에서 유래됐다.

800년 된 소나무로 만든 대들보와 음양의 이치를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별로 장식된 합각, 합각 아래 오행을 상징하는 화방벽 등 여느 고택들과는 차별화된 조견당만의 문화재적 가치를 자랑하며 2013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명품고택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 김주태씨 가족ⓒ투데이신문

현재 조견당은 김주태·안양순(53)씨 부부가 어린 외동딸과 함께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김씨가 오래된 시간만큼 역사, 문화, 철학 등 다방면에서 그 가치를 발하고 있는 조견당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지반 침하로 인해 조견당 안채가 기울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 하지만 근 2년 동안 지역 차원에서 문화재 보존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문화재 해제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2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조견당을 앞으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자는 빠르게 영월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 조견당 대문ⓒ투데이신문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1리에 위치한 조견당을 찾아가는 길. 주천면의 뜨거운 더위를 식혀주는 주천강이 기자를 가장 먼저 반겼다. 주천강의 시원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평범한 여느 집들 사이로 조견당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 발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년 된 조견당의 기품이 오롯이 전해졌다. 입구에서 돌과 흙으로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담벼락이 조견당으로 들어서는 대문까지 길을 안내했다.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길을 걷자 대문 앞에서 소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 두 개의 조각상이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을 마중하고 있었다.

   
▲ ⓒ투데이신문

안으로 들어서자 조견당의 바깥주인인 김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친절이 흠씬 묻어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조견당 안채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웅장하고 다부진 안채와 그 앞에 펼쳐진 안주인 안씨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너른 마당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 800년된 소나무로 만든 대들보ⓒ투데이신문

안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김씨는 기자에게 가장 먼저 안채를 지탱하고 있는 대들보를 소개했다. 이 대들보는 800년 된 소나무를 아치형 모양으로 다듬어 올린 것으로 조견당이 세워진지 20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을 감안하면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 김씨 어머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드신 성주대ⓒ투데이신문

대청마루 한쪽 벽면에는 마치 부적을 연상케하는 무언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씨는 그것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성주대’다”라고 설명했다. 김씨의 모친께서는 농사가 시작되는 매년 음력 3월 3일 거르지 않고 그 해 풍년과 집안의 안식·평화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그는 때마다 소나무 가지와 명주실, 한지를 이용해 성주대를 만들었다. 명주실은 무병장수를, 생활용품으로 으뜸인 한지는 생활이 풍족하라는, 소나무 상순은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란다. 김씨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조견당의 세 합각 ⓒ투데이신문

더위에 조금 지쳐갈 때쯤 안주인이자 이 집의 종부인 안씨가 내준 시원한 냉커피를 한 잔 쭉 들이키며 안채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른 고택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조견당만의 독특한 문양의 합각을 만날 수 있었다.

합각은 지붕과 지붕이 만나면서 이루는 삼각벽인데 조견당의 서쪽과 북쪽 합각에는 달과 별 모양이, 동쪽 합각에는 해 모양이 들어있다. 달과 해는 음양의 조화를 뜻하기도 한다. 김씨는 합각과 함께 안채 측면의 ‘화방벽’을 함께 안내했다.

   
▲ 화방벽ⓒ투데이신문

화방벽은 흑, 백, 황, 적, 청 오행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빛깔의 오방색의 돌을 쌓아 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돌의 크기를 작게해 안정감을 줬다. 김씨는 “건축학적으로 음양오행의 철학을 벽면에 표시해놓은 유일한 집이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 옛 부엌ⓒ투데이신문
   
▲ 켜켜이 쌓여있는 기와 ⓒ투데이신문
   
▲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 ⓒ투데이신문
   
▲ 시제 때 쓰인 물건들(좌), 굴뚝(우)ⓒ투데이신문

조견당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 건축, 철학적 가치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부엌, 구수한 밥 짓는 냄새를 담장 너머까지 풍기는 굴뚝, 오래 묵은 각종 장류를 품은 독 등 오래된 세월의 흔적들도 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당기기 충분했다.

   
▲ 안채가 기울은 것을 보기 위해 매달아 놓은 추(좌), 안채를 받치고 있는 기둥(우) ⓒ투데이신문
   
▲ 지반보다 낮아진 주춧돌ⓒ투데이신문

그런데 앞으로는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조견당을 사진으로 밖에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반침하로 인해 안채가 기울기 시작한 지 어언 2년째. 실제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건물을 기둥 하나가 애써 지탱하고 있었으며, 볼록 올라와 있던 주춧돌은 지반보다 낮아진지 오래였다. 집에 매달아놓은 추와 건물이 이루는 각의 기울기, 비스듬한 기둥, 금이 간 대들보가 그 심각성을 더욱 실감케 했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2014년 영월군에서 안전진단을 내린 결과 조견당은 위험 건물로 판단됐다. 이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해체복원공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영월군 의회가 열악한 지방 재정과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조견당 보수공사를 반대해 이는 두 차례나 무산됐다. 급기야 인근 주민들은 문화재 해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은 문화재 해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민심에 눈이 먼 영월군과 조견당을 두고 벌어진 집단 이지매로 많은 가치가 있는 고택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조견당 안채 ⓒ투데이신문

조견당은 오는 9월 1일 문화재 해제 여부 발표를 앞두고 있다. 만약 조견당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치 사형일 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일 듯 싶다. 이날 문화재 해제가 결정될 경우 조견당은 더 이상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김씨가 사비로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국가 차원에서 공사를 진행했을 때만큼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조견당 방문. 언젠가 영월을 다시 방문했을 때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주천면을 밝게 비추고 있을 조견당을 머릿속에 그리며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이날 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조견당의 모습이 ‘Last Scene’(마지막의, 최후의)이 아닌 ‘Lasting Scene’(계속되다, 지속되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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