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에 놓인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43년 동안 서울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곳이 있다.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이다. 1971년 1월에 세워진 노량진수산시장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3만여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수산물전문 중앙도매시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지닌 수산시장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2년 수협이 시설 노후화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을 이유로 새 건물을 지어 장사할 공간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수협 측은 현대화사업의 명목으로 시장 옆 사업부지 4만450㎡, 전체면적 11만8346㎡의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첨단 수산물 유통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해당 건물이 애초 약속과 달리 좁게 지어지고 유통 활용성 등의 측면에서 시장 기능을 할 수 없다며 입주를 거부하고 나섰다.

급기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 반대 집회를 시작했고 중‧도매상인을 포함한 모든 상인이 참여하는 연합회가 생겼다. 상인 대부분은 이곳을 리모델링해 전통 재래시장으로 보수‧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4일 오후 3시, 본지는 혼란에 빠진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노량진역에서 조금 내려가니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 총연합회’가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수산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바다에 온 듯한 냄새가 물씬 났다. 한쪽에 놓인 다양한 해산물은 잘게 부숴진 얼음 위에서 팔리기를 기다렸다. 새우, 대게, 연어, 광어, 우럭 등이 제각기 싱싱한 자태를 뽐냈다.

시장 안에는 ‘생존권 보장’이라는 글귀가 적힌 옷을 입은 상인이 많았다. 상인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채 손님을 향해 소리쳤으며 비닐봉지에 생선을 담고, 칼로 해산물을 손질했다. 이따금 생선을 보기 좋게 정돈하거나 포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주황색 전등 아래에서 해산물을 팔기 위해 서 있었다. 한쪽에는 얼큰한 해물탕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생선회를 파는 상인 이승기(63)씨는 이곳에서 장사한 지 30년이 넘었다. 농어, 놀래미, 도다리, 광어, 우럭, 도미까지…. 그는 생선횟감을 팔아 자녀 두 명을 결혼시켰다. 자신의 뒤를 이으려는 큰 사위와 함께 같은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30년 전, 우연히 새벽에 수산시장을 찾았던 이씨는 우렁찬 경매소리와 활기찬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는 이곳에서 한번 승부를 걸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던 패션사업을 정리하고 이 일에 뛰어든 뒤 지금껏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는 새벽 5~6시에 집을 나서 저녁 8~9시에 들어갈 때가 많았다. 별을 보고 나가서 별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일을 하면서 손과 발이 얼어 동상에 걸리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다른 일에 한눈 팔지 않았다. 30대 청년으로 들어와 이제 60대 노인이 되었지만, 자신을 찾아주는 단골손님이 있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산다.

   
 

이씨는 지난달 몇몇 상인과 함께 삭발시위를 했다. 머리까지 깎은 건 시장을 지키려는 굳은 결의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나 군대 갈 때 말고는 삭발한 적이 없는 머리였지만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겠다는 각오로 결심을 내렸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머리는 자존심 아닌가(웃음). 내 자존심을 깎아가며 살신성인하며 내 한목숨 수산시장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로 잘랐다.”

현재 이씨를 비롯한 상인들은 수협이 지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식 건물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바야흐로 2009년, 상인 측과 수협 측은 현대화사업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당시 수협은 경매와 판매가 공존하는 시장, 시장 면적의 수평 이동, 상인들을 전부 데리고 갈 것 등을 약속하며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렇게 2012년에 현대화사업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떴다. 그런데 수협 측은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청회를 한 번도 하지 않고 도면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겉보기에 그럴 듯하게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상인들은 좌절했다. 먼저 수협 측은 면적이 넓어졌다고 했지만 상인들이 장사하는 공간이 넓어지지 않았다. 1층 수평의 면적이 아니라 복층으로 계산된 면적이었기 때문이다. 면적 외에도 창문 크기, 냉각기, 하수도, 비싼 임대료 문제 등이 있다고 상인들은 주장했다. 아울러 수협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호텔, 카지노 등을 세우려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상인들은 “유통이나 활용성 등을 따질 때 시장은 백화점처럼 될 수는 없다”며 들고 일어섰다.

   
 

이씨는 상인들이 손과 발이 얼어가면서 쌓아온 역사적인 곳이 사라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상인, 유통인, 어업인,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산시장은 상인들이 오랫동안 만든 문화·사회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노량진수산시장에 오는 이유는 현대화된 마트 건물이 아니라 전통 시장을 보러 오는 것”이라며 “우리가 저기(신축건물)로 들어가면 노량진수산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전통재래시장을 지켜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이 수협 사무실 앞에서 반대 집회를 한 지도 어느덧 6개월째다. 지난해 9월 9일, 상인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해 아침마다 집회하고 전략 회의를 한다. 그만큼 시장을 살리려는 상인들의 의지는 뜨겁고 강하다.

상인들은 자신이 일군 전통의 공간이 사라지지 않길 원한다. 상인 한모(40)씨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일한다. 한씨는 “새로 지어진 건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여기 환경을 바꿨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일한 상인 김모(76)씨도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는 “새로 지은 건물에 가보니 한 공간이 1.5평도 안 되더라. 현대화시장 건물로 들어가면 재래시장의 기능이 죽는다”며 “지금 있는 곳을 리모델링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생선을 판매하는 서모(50)씨도 “여기 있는 우리 엄마들이 허리와 다리가 휘고 손가락에 관절염이 올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며 부디 시장이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고객 역시 현 시장의 모습에 만족도를 드러냈다. 이날 시장을 찾은 홍모(50)씨는 “가게에서 쓸 해산물을 구매하러 자주 오곤 한다”며 “이 정도 시장이면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좋아했다.

‘자본’과 ‘현대화’에 밀려날 위기에 처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이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될까. 양식장에 갇힌 물고기가 될까.

상인들 머리 위로 ‘노량진수산시장을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빨간색 리본이 힘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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