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지만… 삶은 퍽퍽해
안전거리 확보하면서도 속도 내야
술 취한 손님 상대하는 일 어려워
“택시는 나에게 마지막 직업이다”

본지는 지난해 12월 23일, 운전대를 잡고 일하는 택시 노동자를 취재했다. <땀으로 쓴 노동일기>를 통해 서울의 밤거리를 누비는 야간 택시기사의 하루를 보여드리겠다.  

※ 아래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5천원, 1천원, 5백원, 1백원….

택시기사 최만식(가명‧55)씨의 하루는 충전소에서 잔돈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된다. 묵직한 동전을 차에 풀어놓으면 비로소 손님 맞이할 준비가 끝난다. 최씨는 빈 차를 몰아 저녁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섰다.

오후 5시 30분, 서울 한복판 도로 위에서는 택시 노동자의 고단한 행렬을 볼 수 있다. 번화가로 들어서니 일반 차보다 택시가 더 많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가던 최씨가 손님을 태우려는데 손님은 옆에 기자가 탑승해있다는 이유로 타지 않았다. 그는 “괜찮아요”하며 웃어넘겼지만 기자는 미안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일일이 동승을 부탁하며 취재에 임했다.

   
 

<행복>

최씨가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째다. 과거 종이회사에서 근무했고 이후 다른 일을 하다가 2007년, 이 일에 뛰어들었다. 지금껏 택시 모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었지만 딱 한번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 직업을 알아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당시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택시기사 말고 농사한다고 쓰면 안 돼요?”

지금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지만 최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짠하다. 그래도 택시 덕에 딸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고등학생인 아들을 뒷바라지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만족한다고 최씨는 생각한다.

야간 운전을 마친 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5시. 최씨는 고구마 세 개와 막걸리 한 잔으로 겨우 허기를 채우고 잠이 든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그의 팔을 물며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야만 겨우 외출한다. 피곤하고 고단한 삶의 연속이지만 좋은 회사에 취직한 딸과 운동 잘하는 아들, 애교 많은 부인이 있어 그는 행복하다.

   
 

<임금>

겨울에는 날이 추워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한해 중 겨울 손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오죽하면 겨울에만 택시를 모는 기사들이 있을까.

서울 시내 택시 회사도 250여 개에 달한다. 최씨는 회사에 소속된 법인 택시기사인데 그가 속한 A회사는 일부 직원에게 ‘전액관리제’ 형태로 임금을 준다. 전액관리제란 그날 번 돈 전부를 회사에 주고 월급 형태로 돈을 받는 것이다.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은 하루 대략 14만~15만원 사이다. 이렇게 해서 월 340만원 정도를 채워야만 각종 수당을 포함해 120여만원을 받을 수 있다. 사납금 이상을 벌면 ‘업적급 제도’를 통해 근로자와 회사가 반씩 나눠 갖는다.

근무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간, 야간으로 나눠서 한다. 보통 주간에는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야간에는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한다.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쉰다. 법인 택시기사의 법정 근무시간은 하루 약 6시간 40분인데 실제로는 10시간이 넘는다. 법정 시간을 지키며 일하는 건 돈 벌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으므로 졸음을 참아가며 택시를 지킨다.

오후 6시, 당산역으로 가는 30대 여성 손님이 탑승했다. 최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을 반겼고 여성 손님은 당산역으로 가달라고 했다. 잠시 후 차 안을 가득 메운 정적이 깨졌다.

“좌회전이나 우회전할 수 있어요, 어떻게 가실래요?”
“음, 좌회전이요”

그는 손과 눈을 빠르게 움직이며 길을 찾으랴, 말을 건네랴 정신이 없었다. 운전하면서 되도록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는 최씨의 배려였다. 여성이 내리자마자 당산역 앞에서 어떤 남성이 탔다. 이 남성의 행선지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영등포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차가 많아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차 안에서는 클랙슨 소리, 껌 씹는 소리만이 들렸고 창문 밖 가게에서는 최신가요가 흘러나왔다.

택시가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남성은 카드를 내밀었고 최씨는 이를 받아 기계에 긁었다. 계산이 완료되니 기계가 영수증을 토해냈다. 남성은 영수증이 미처 나오기 전에 차에서 내렸다. 최씨는 혹시 손님이 무언가를 두고 내렸나 싶어 백미러로 좌석을 살폈다. 이어 택시 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내려 기지개를 켰다. 뻣뻣해진 허리와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담배를 꺼냈다. 그 순간, 한 중년남성이 택시 문을 열었다. 최씨는 담배를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 중년남성을 따라 차에 재빨리 올라탔다.

   
 

<안전>

한참을 운전하다가 명동 근처에서 중국인 3명을 태웠다. 이번에도 최씨는 외국인에게 의사를 묻고 가는 길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우회전으로 갈까요?”
“잘 모르겠어요”
“우회전이 더 나을 거예요. 신호 2번 받으면 바로 가니까요”

최씨는 자신만의 코스를 정해놓고 다니는데 주로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강서구 쪽을 돈다. 하도 많이 다녀서 어디에 가야 손님이 많은지, 어느 쪽으로 가야 빠른지를 꿰뚫고 있다. 그래야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빨리 찾을 수 있으며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다. 이는 손님을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운전은 오래 할수록 겁이 나고 조심스러워요”

택시운전 경력만 10년인 베테랑 최씨가 말했다. 운전은 매일 하지만 늘 긴장의 연속이다. 사고 없이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어서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거나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게다가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라디오를 아주 작게 틀었고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감미로운 팝송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통증>

오후 7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좁디좁은 공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시간이다. 최씨는 종종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어깨와 허리가 쑤시고, 앉아있느라 무릎도 아프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자주 스트레칭을 해줘야 하는데 자신은 개미처럼 부지런한 습성이 있어 잘 쉬지 않는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곧 그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한숨과 함께 길게 뿜어져나왔다.

<주차>

오후 8시, 출출해진 최씨는 돈가스를 파는 기사식당으로 향했다. 이 기사식당을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차 공간 때문이다. 식당 입구에 들어선 그가 차에서 내리면 한 중년남성이 택시를 대신 주차해준다. 사람 많고 차 많은 서울에서 ‘공짜 주차’는 쉬운 일이 아니다.

돈가스를 급하게 썰어 먹은 최씨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었다. 후루룩, 마치 국밥을 들이켜듯 커피를 마시는 속도가 빨랐다. 그는 더부룩한 속을 소화할 겨를도 없이 부대끼는 배를 안고 차에 올랐다. 그에게 시간은 곧 돈이므로 서둘러 거리로 나갔다. 부지런함이 곧 하루 노동 값을 결정하니 손님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면 꼼지락거려선 안 된다.

   
 

<진상>

새벽 1시, 술에 잔뜩 취한 여성이 차에 오르니 내부에 술 냄새가 흩뿌려졌다. 술 냄새만 풍기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술 마신 승객이 차 안에 토사물을 뿌리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한 변호사가 토를 해놓고선 주소를 적어주면서 “민사소송하세요”라고 말한 기막힌 일도 있었다.

최씨의 말마따나 택시기사는 못 볼 꼴을 참 많이 본다. 특히 야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택시에 오른다. 영화 <베테랑>에 나올 법한 부유층 자녀의 추한 꼴도 종종 목도하지만 못본 척해야 한다. 술에 취한 사람과는 사소한 것으로도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이미 경험으로 안다.

전에 한번은 술에 취한 여성이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그 여성은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무리 깨워도 꿈쩍하지 않자 결국 여성을 태우고 파출소로 향했다. 여경들이 나서서 여성을 일으켰는데 그녀는 적반하장으로 경찰에게 폭행을 가했다. 최씨는 그녀의 진상을 지켜보며 요금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경찰서에서 기다려야 했다.

커플의 진한 스킨십도 못 볼 꼴에 해당한다. 예전에 외국인 남녀가 뒷좌석에서 진한 스킨십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여성이 운전하던 최씨를 끌어안고 모텔로 함께 가자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택시를 몰면서 우여곡절이 많다. 그는 택시 운전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모으면 책 한 권이 된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요금>

아무래도 가장 서럽고 속상한 일은 요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술 취한 여성이 최씨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요금을 내지 않고 그냥 간 적도 있었다. 돈이 없다며 계좌이체를 하겠다고 해놓고선 보내지 않은 사람도 왕왕 있다. 요즘에는 돈이 없는데도 택시를 타는 손님이 있어 기사들이 그런 사람을 경찰서에 넘기기도 한단다. 하지만 최씨는 손님에게 범죄기록을 남기는 게 걱정돼 웬만해선 경찰서는 안 가려고 한다.

요금을 떼어먹는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최근에는 훈훈한 일이 있었다. 한 여학생을 태워주고 요금이 3500원 나왔는데 학생은 돈이 없다면서 계좌이체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속는 셈 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는데 다음날 바로 돈이 들어왔다. 운전대를 잡은 지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갑고도 얼떨떨했고 괜히 감동도 받았다. 돈을 보내주겠다고 하고선 묵묵부답인 사람이 많은데…. 최씨는 오히려 그 학생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불빛>

“한놤덩(한남동)으로 가주세요”

한 외국 여성이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최씨는 사람이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길을 거침없이 올랐다. 여성을 내려주고 오는 길, 한남동 일대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H호텔은 건물에 조명을 달아놓아 더욱 빛이 났다. “저 호텔은 매년 조명을 참 멋있게 꾸민다니까요” 그는 중얼거리며 화려한 야경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

도로에 나오면 최씨의 시선은 야경이 아닌 앞차로 향한다.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강한 라이트가 그의 눈을 내리쏘았다. 요즘 라이트는 LED로 많이 나와 빛이 더 강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눈이 따가워도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면 눈부신 불빛은 참아야 한다. 피곤함에 불빛까지 감당하니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눈이 엄청 뻑뻑해진다.

택시기사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도 속도를 내야 한다. 간혹 신호를 무시하거나 먼저 손님을 태우기 위해 택시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있다. 최씨도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손님이 타지 않을 때는 가끔 곡예 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1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태우지 못한다. ‘빈 차’는 택시기사에게 두렵고 잔인한 단어다.

<졸음>

새벽 2시, 최씨는 이 시간대가 가장 힘들다. 졸음도 한꺼번에 쏟아지고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홀로 불을 밝히는 한 편의점을 들렀다. 혹여나 강도의 표적이 될까 봐 편의점에 갈 때는 항상 차 문을 꼭 잠근다. 어떤 기사들은 강도를 만날까 무서워 차 앞에 드라이버를 갖고 다니기도 한단다. 최씨는 마른 낙엽 같은 손으로 충혈된 눈을 비비며 커피를 홀짝였다. 담배를 피우거나 아내와 통화를 하며 잠을 쫓기도 했다.

   
 

<직업>

최씨는 기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손님보다 제도와 택시회사라며 원망 섞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과도한 사납금 제도, 택시회사의 갑질, 승차거부 등 여러 문제를 말하면서 열을 올렸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팍팍하다며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택시는 나에게 마지막 직업이에요”

자신의 일에 대해 최씨는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택시는 나이가 들수록 갈 곳이 없는, 우리 늙은 아버지들의 마지막 선택이기도 하다.

새벽 3시 40분. 서글픈 밤은 속절없이 지나 노동의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됐다. 서울의 새벽, 도로 위에선 오늘도 어김없이 택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택시기사의 충혈된 붉은 눈도 함께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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