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쓴 노동일기> 새해 첫 기사는 ‘연탄 배달’ 현장으로 시작한다. 본지는 지난달 10일, 겨울이 되면 가장 바빠지는 이들의 하루를 따라다녔다. 누군가의 까만 땀방울이 묻은 연탄노동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  

※ 아래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검은 때가 묻은 2.5톤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트럭에 오르니 운전대를 잡은 한영석(59)씨가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조수석에 탄 김미숙(가명‧57)씨는 깔깔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이들은 연탄을 배달하는 노동자다. 쉬운 배달은 한씨가 도맡아 하지만 주문량이 몰리면 친구인 김씨가 종종 돕는다. 차에서 본 두 사람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아니라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아침 8시 30분. 한씨는 누군가가 추위에 떨며 연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페달을 세게 밟았다. 연탄을 든든하게 채운 트럭은 와앙-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이날 오전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4동의 한 달동네에 연탄 1500장을 전달해야 한다.

달동네에 다다를 무렵, 한씨는 육교 다리 아래로 차를 댔다. 두 사람은 보도블록 위에 폐현수막을 깔고 그 위에 연탄을 쌓아올렸다. 가파른 곳을 오를 때는 자칫 연탄이 쏟아질 수 있어 많이 실어선 안 된다. 연탄 500장을 덜어놓고 달동네로 올라갈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원래는 살구색이었지만 지금은 까매진 고무장갑. 이것을 낀 한씨는 연탄을 두 장씩 내렸다.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연탄이 비에 젖을까 초조한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그들의 입에선 하얀 김이 나왔다. 허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고 고개는 계속 아래를 향해 있었다.

다 내려놓은 뒤 두 사람은 달동네로 향했다. 처음 출발할 때 부릉부릉, 부드러운 소리를 냈으나 가파른 경사를 만나자 덜컹덜컹, 거친 신음을 토해내는 듯했다. 연신 출렁대는 차 안에서 이들의 머리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한씨는 A연탄의 도소매 일을 한다. 즉, 공장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대리점 역할인 셈이다. 배달뿐만 아니라 연탄난로나 보일러를 수리하기도 한다. 이 일은 한해 중에서 10월 초부터 2월 말까지가 제일 바쁘다. 요즘처럼 일이 많을 때는 보통 새벽 5시에 밖으로 나와서 오후 5시쯤에 집으로 들어간다. 주말이나 공휴일도 쉬지 못하고 눈과 비가 심하게 올 때만 쉰다.

벌어들이는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 그나마 최근 가스와 기름값이 올라가 연탄 수요가 많아져 다행이다. 겨울에 열심히 돈을 벌어 더운 여름에 쓰는데, 요즘에는 연탄구이 요리를 하는 식당도 많아 여름에도 종종 배달을 한다.

   
 

달동네에 도착했지만 길이 좁은 탓에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에도 한씨는 능수능란하게 차를 갖다 댔다. 두 사람은 울퉁불퉁 제멋대로 파인 시멘트 바닥에 폐현수막을 깔았다. 현수막을 펼치는 이유는 연탄으로 인해 바닥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집게를 구멍에 끼운 다음 연탄 1000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집게는 한번에 여러 장을 옮기기 수월하므로 배달할 때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이다. 두 사람은 집게로 양손에 연탄을 2장씩 들고 옮겼다. 연탄 한 장에 3.6kg이라 15kg가량을 드는 셈이다. 한번에 많은 양을 옮기는 게 효율적이긴 해도 어깨와 허리에 무리가 간다.

   
 

길목에 세워둔 연탄은 이날 오후에 방문하는 봉사자들이 수혜자의 집 창고로 배달한다. 한씨는 비에 젖지 않도록 폐현수막을 꼼꼼하게 덧씌웠다. 현수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그 위에 연탄 몇 장을 올려놓기도 했다. 

   
 

이어 한씨는 육교 근처에 둔 연탄 500장을 싣고 달동네로 다시 올라왔다. 오르막길에 세운 트럭이 혹여라도 움직일까 싶어 바퀴 아래에 받침목을 끼워 넣었다. 연탄 내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가 트럭 옆에 우두커니 섰다. 김씨가 할아버지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르신, 어디 아파요?”
“나, 지난주에 죽다 살아났잖아”
“왜요?”
“밥통(위) 수술했거든”
“아이고, 어떡해요….”

할아버지와 김씨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외롭고 가난한 노인에게 말동무가 되고 안부를 묻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이 마을에 사는 김춘자(74)할머니도 다가와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푸석한 손을 비벼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우리 집에 있는 깨진 연탄 좀 가져가면 안 될까요?”

할머니의 사정은 이러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여러 명이 부모와 함께 자신의 집에 와서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했다. 그런데 배달에 서툰 아이들이 창고 한쪽에 쌓인 연탄을 무너뜨렸다. 이에 할머니가 평소 알고 지낸 한씨에게 깨진 연탄을 치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할머니는 백내장 때문에 한쪽 눈이 안 보여 연탄을 옮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면 움직이지를 못해. 꼭대기에 사는 게 죄지” 할머니는 자신의 거처를 “꼭대기”라고 표현했다.

   
 

부탁을 들은 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름한 연탄 창고로 갔다. 그리고 3평 남짓의 창고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옆에 선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미안해했다. 공간이 좁아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평소 한씨가 무거운 짐을 든 노인을 보면 모른 척하지 않고 도와준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일하는 모습을 보던 할머니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누가 컴컴한 창고에 들어가서 연탄을 치워주겠어요. 사장님, 정말 고마워요”

창고 안에서 한씨는 자루를 더 달라고 외쳤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을 치며 “가만 있어 보자, 마대가 어디 있었더라”하며 집 주변을 샅샅이 뒤져 마대를 구해왔다. 한씨는 깨진 연탄을 포대에 담고 쓰러진 연탄을 똑바로 세웠다. 잠시 후 여덟 자루를 한가득 안고 나온 그는 이를 자신의 트럭으로 가져갔다. 할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믹스커피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했다.

   
 

한씨는 풍족하지 않은 생활임에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때론 고철과 같은 고물을 주워서 판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거나 밑반찬 봉사도 한다. 독거노인의 집에 연탄보일러가 고장 나면 달려가 수리를 해주고, 필요 부속품은 자신의 돈으로 사서 무료로 고쳐준다. 이런 도움을 줄 때마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한씨는 말했다.

   
 

낮 12시, 한씨는 혼자 빈 트럭을 몰고 연탄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은 연탄이 나오는 과정에서 들리는 소음과 먼지로 가득했다. 바닥도, 컨베이어벨트도, 사람들의 손도…. 공장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한씨는 30분 동안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지는 연탄을 자신의 차량에 실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렸고 머리칼은 젖어들었다.

한씨는 트럭에 연탄을 가득 싣고 나오자마자 철물점에서 투명비닐 7m를 샀다. 자신이 운영하는 보관소에서 비닐로 연탄을 덮고 점심으로 백반을 시켜먹었다.

   
 

34년 전, 한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부산에서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마땅히 배운 기술이 없어 연탄 공장에 들어가 조수일부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탄 납품일을 해왔다. 그렇다고 한우물만 판 것은 아니다. 버스운전, 막노동, 고물 줍기, 이삿짐센터…. 그동안 걸어온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탄 배달일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고 돈이 안 돼서였다.

그는 25년 동안 하루는 연탄을, 하루는 운전대를 잡았다. 마을버스를 성실히 몰아 버스회사와 구청장에게 각각 상을 받기도 했다. 마을버스 기사에게는 영광스러운 고속버스 운전기사 제안이 들어온 적도 있다. 하지만 7년 전 운행 제도가 바뀌면서 격일근무가 어렵게 되자 운전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면서 한씨는 김씨와 함께 지하 1층에 자리한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여기에 배달할 물량은 500장이었다. 한씨는 집게를 사용해 양손에 8장을, 김씨는 4장을 들고 어두운 지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김씨는 비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연탄은 비와 아주 상극이에요”

연탄이 물을 머금으면 불이 잘 안 붙어서 최대한 비에 젖지 않게 해야 한다. 비가 거세지자 두 사람의 몸은 더욱 분주해졌고 오후 4시가 돼서야 노동이 끝났다. 두 사람은 땀과 비로 얼룩진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씨에게 일이 얼마나 힘든지 물었다. 그런데 그는 “힘든 거 별로 없어요.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해요”라며 하얀 이를 드러낸 채 말했다. 물론 무거운 연탄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들지만 이마저도 술 한 잔으로 털어낸다고 했다.

그의 가장 큰 버팀목은 가족이다. 연탄배달을 하면서 두 딸 중 첫째 딸을 레슬링 국가대표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했다. 자식, 그가 재투성이로 일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자식이 잘되는 것, 부모는 그거 하나면 돼요”

연탄 노동 30년에 대한 마음가짐이 한마디에 녹아있었다. 일하는 내내 그의 찌푸린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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