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본지는 ‘땀으로 쓴 노동일기’ 코너를 통해 노동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편에 이어서 이번 호에는 빛의 속도로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기사의 하루를 담았다. 아울러 10부작 다큐 형식으로 나눠 이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우리가 평소 친숙하게 느끼면서도 잘 몰랐던 택배 노동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 글 싣는 순서

◎ 1부: 캔커피로 여는 아침 
◎ 2부: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 3부: 우리도 감정노동자다
◎ 4부: 깨진 안경, 바꿀 시간도 없다
◎ 5부: 비가 몰아쳐도… 나는 달린다
◎ 6부: 무거운 짐 들고 오르는 ‘계단산’
◎ 7부: 불러도 대답없는 그 이름
◎ 8부: 손수레와 함께 하는 집하시간
◎ 9부: 밥 굶고 짐 내리는 사람들
◎ 10부: 뼈빠지게 일하는 이유

▲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힘들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노동일기’ 취재 전 전화통화에서 그가 건넨 말이다. 기자는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택배기사의 일상을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한데 “오전만 취재하고 가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취재하는 게 힘들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럼 의미가 퇴색된다면서 계속 그를 설득했다. 이윽고 다음 날 저녁에 취재를 허락한다는 의미의 이런 문자를 받았다.

“내일 아침, 화곡역 5번 출구에서 봬요. 얼굴 타니까 모자 쓰고 오세요.”

<본지>는 지난 5일 오전 6시 30분, 지하철 화곡역 5번 출구 앞에서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최장우(43)팀장을 만나 일터로 향했다.

최 팀장은 원래 굴지의 건설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8년여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경기가 어려워 감원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철근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린 근로자에게 가서 ‘산재처리가 안 된다’는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힘없고 약한 건설노동자에게 갑질을 해야 하는 게 정말 싫었다. 건설노동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돕고자 건설회사에 들어간 것인데…. 자본의 논리 앞에서 그의 다짐은 한없이 무너졌다. 이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고 6개월 뒤 아는 사람의 소개로 택배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관리를 잘하고 성실히 일한 만큼 돈을 버는 정직한 직업이라서다. 물론, 택배일 12년차에 접어든 그는 무엇보다 ‘독기’가 충만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 ⓒ투데이신문

◎ 1부: 캔커피로 여는 아침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침 6시 50분경, 우리는 경기도 일산에 자리한 A택배회사 마포지점 터미널(하차장)에 도착했다. 마포구에 전달되는 모든 택배가 여기로 모인다. 최 팀장은 사무실에 들어가 출근 기록을 남겼다. 사무실 안에는 몇몇 택배기사들이 책상 위에 펼쳐놓은 송장과 돈을 정리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연령대는 20대 중후반부터 60대로 다양하며 생활력이 강한 이들이 많다고 최 팀장은 말했다.

최 팀장은 자판기에서 갓 뽑은 차가운 캔커피를 마시며 물건을 실은 화물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화물차를 기다리는 사이 동료 기사들과 담소를 나눴다. 하늘은 흐렸지만 그들의 얼굴은 환한 해와 같았다. 아침 일찍 나와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힘들 것 없어요. 그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면 돼요. 일은 재미있게 해야 해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최 팀장의 유니폼 가슴 쪽에 붙은 스마일 캐릭터와 그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위에는 ‘happy delivery(행복한 배달)’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가위, 바위, 보”

최 팀장과 다른 동료 7~8명이 모여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악소리를 냈고 누구는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렸다. 알고 보니 ‘음료수 내기’였다. 누군가가 “이 형님은 맨날 이겨. 어떻게 한 번도 안 걸리지?”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눈을 흘겼다. 또 다른 한쪽에서도 음료수 내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주째 음료수 내기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간 기사에게 다가가 축하인사를 건넸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그와의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던 K모(55)씨는 한 달에 300만원에서 350만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그나마 여기에서 얼마 못 버는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집에 가면 거의 초주검이 된다며 힘들다고 토로했다. “집에 가는 순간 그냥 쓰러져요. 아침 6시 30분쯤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니 체력적으로 견디기 어렵죠. 그래도 일을 안 할 수는 없어요. 집안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 ⓒ투데이신문

오전 7시 20분이 되자 하나둘씩 택배 차량이 도착했다. 가만히 앉아 쉴 법도 한데 최 팀장은 “오라이~ 더 빼야 해”라며 동료들의 주차를 도왔다. 기사들의 손에는 커피 아니면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차량 짐칸에 올라가 꼬마 빗자루를 들고 먼지를 털어냈다. 최 팀장은 청소하거나 짐칸에 걸터 앉아 쉬고 있는 동료에게 다가가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물건이 도착하자 그가 새장갑을 꺼내 손에 꼈다. 목장갑은 운전하다 보면 보풀이 입으로 들어가기에 불편하단다. 그는 배달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자주 써야 하므로 고무 코팅된 천원짜리 장갑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가 양파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요즘에는 양파를 비롯해 마늘, 매실이 많이 나오는 철이란다. 조금만 더 있으면 복분자도 나올 시기다. 최 팀장은 택배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철 과일, 채소 등을 알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투데이신문

◎ 2부: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오전 7시 30분경, 저 멀리서 물건을 실은 큰 화물차가 들어왔다. 기사들은 이 차에서 물건을 꺼내 자기 담당 구역에 배달될 물건을 고르는 일을 한다. 각양각색의 택배 물건이 화물차 짐칸 내부에 가득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건부터 사람 몸통만 한 박스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이 짐칸에는 평균 2천개가량의 물건이 들어간다고 한다. 20대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2명과 택배기사 1명이 짐을 도르래에 실어 컨베이어 밸트 위에 올렸다.

짐칸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물건을 내리고 있는 택배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근무한 지 3년째인 오모(41)씨였다. 오씨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돌아가면서 물건을 내린다고 했다. 예전에는 짐을 택배기사들이 다 내렸지만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한다. 물량이 가장 많은 가을이나 명절 때가 제일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한 택배기사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박스를 붙잡고 ‘삑삑’ 스캔을 찍었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박스에 찍혀 있는 바코드를 찾아 찍느라 바빴다. 이 작업은 해당 물건이 마포지점 터미널에 입고됐다는 것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자신의 물건이 언제쯤 도착했고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객의 배송조회 편의를 위해 실시하는 작업이었다.

▲ ⓒ투데이신문

가끔 바코드 불량으로 잘 안 찍히는 것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담당자는 매몰차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물건을 쫓아가 스캔을 시도했다. 몇 차례 해도 안 되면 일단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박스에 바코드를 찍던 김주인(43)팀장. 그는 택배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허리가 아플 것 같다는 질문에 김 팀장은 “허리뿐만 아니죠. 어깨, 무릎 관절도 아파요. 택배는 시간 싸움에 육체노동이다 보니까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할 얘기가 많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택배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에요. ‘왜 안 오냐. 빨리 와 달라’고 하는 고객도 있죠. 물론 일부 고객만 그러는 건데, 속상하기도 해요. 물건은 많고, 배송시간은 촉박하고….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물건을 갖다 주는데 늦게 왔다는 핀잔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죠”.

한편, 택배기사들은 내려오는 물건을 받고자 컨베이어 벨트 주변으로 몰렸다. 물건을 정리하던 최 팀장은 정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스를 아무렇게나 넣을 경우, 그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구역별로 모아 정리하면 일도 빨리 끝나고 길을 헤매지 않게 된다. 정리는 처음 택배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다. 그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송장을 뜯어냈다. 차가 출발하기 전 배송확인 스캔을 찍기 위해서였다.

▲ ⓒ투데이신문

◎ 3부: 우리도 감정노동자다

최 팀장은 이곳에서 성실하기로 소문난 기사를 소개해줬다. 그는 홍익대 근처를 담당하고 있는 택배일 9년차 홍모(34)씨였다. 홍씨는 택배일을 하면서 대인관계와 휴식을 포기해야 했다. 돈은 많이 벌지만 3살과 5살 된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는 무릎 보호대를 차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다.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낮은 택배 단가다. 물건 하나당 택배 단가는 최소 2500원. 여기에서 2500원을 택배회사 본사, 영업지점 등 5등분을 한다. 이후 기사에게 떨어지는 돈은 대략 700원에서 800원 사이다. 여기에 차량유지비, 기름값 등을 빼면 기사 손에 쥐어지는 돈은 더 적다.

한 택배기사는 어찌 보면 택배일도 ‘감정노동’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하루에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사람 관계에서 문제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택배일을 12년째 해오고 있는 문모(49)씨는 “간혹 물건을 받았으면서 못 받았다고 딱 잡아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정말 난감해요. 바쁜 상황에서 일일이 통화기록을 남겨놓을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문씨는 택배를 보낼 때 받는 이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틀리지 않아야 받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주소가 틀릴 경우 택배기사가 배달하다 말고 전화를 걸어 받는 이에게 구체적인 주소를 물어야 해요. 그러면 시간이 지체되지요. 게다가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배달이 안 되는 거예요. 무작정 기다리거나 일단 다른 물건들을 먼저 배달하고 다시 와야 하죠”라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정확히 써주시길 바라요. 그럼 웬만하면 다 갖다드려요”라고 당부했다.

오전 9시 30분경이 되자 한 사람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전자기기로 보이는 물건에 사진을 찍었다. 그는 바로 영업소 관리부장 정모(34)씨였다. 정씨는 “파손되거나 젖은 물건 등으로 인해 추후에 발생할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고객이 파손된 물건을 받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예전에 한 기사는 60만원짜리 모니터가 깨져 20만원을 변상한 적도 있단다.

물론 포장이 어떻게 돼 있느냐에 따라 보상의 폭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포장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택배기사가 책임을 물지 않을 수도 있다. 정씨는 TV모니터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니터는 액정이 약해서 (보내는 쪽에) 에어캡을 감아서 보내라고 해요. 그러면 충격이 분산돼 깨질 위험이 적으니까요”.

기사들은 자신이 배달할 물건을 차에 실었다. 여기저기서 “영차”, “끙”, “으랏차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1년 동안 근무했다는 이모(52)씨는 온몸이 종합병원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싣던 물건을 잠시 내려놓더니 바지를 걷어 자신의 종아리를 보여줬다. 그의 종아리는 근육으로 가득했고 어딘가에 긁힌 상처도 몇 군데 보였다.

이씨는 “우리는 많이 걸으니까 이렇게 근육이 많이 생겨요. 무거운 것을 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니까요. 근육을 많이 쓸 수밖에 없죠. 아마 병원 가면 바로 입원하라고 할 걸요(웃음). 택배일 하는 사람치고 안 아픈 사람은 없어요. 그래도 일은 대체로 만족해요”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싱긋 웃었다.

▲ ⓒ투데이신문

◎ 4부: 깨진 안경, 바꿀 시간도 없다

오전 9시 50분, 배달할 물건을 짐칸에 모두 실은 최 팀장은 차 안에서 또 다른 작업을 진행했다. 그를 따라 기자도 차에 올라탔다. 최 팀장은 “내일 쉬는 날(현충일)이니까 많이 다닐 거예요. 오늘 집에 가면 잠이 잘 오실 겁니다(웃음). 이 차가 좀 높아서 오르내리려면 다리가 좀 아플 텐데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파스 사드릴게요”하며 웃었다. 출발 전 그의 긍정 에너지를 충전 받으니 왠지 기운이 나는 듯했다.

그는 백미러에 붙어있던 코팅된 지도를 떼어내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를 했다. 순식간에 오각형 모양으로 잘린 서교동 구역 지도에 빨간점이 가득 찼다. 예전에는 이 지도의 4배가 되는 구역을 담당했으나 배달과 집하 물량이 많아지면서 다른 동료와 분담하게 됐다.

그가 빨간색으로 표시하던 사이, 많은 차가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안경 아래쪽이 살짝 깨져있었다. 일주일 전, 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안경이 떨어져 깨졌다고 그는 말했다. 왜 안경을 바꾸지 않냐고 묻자 ‘시간이 없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달 도중 빙판길에서 넘어져 손가락이 완전히 꺾인 적도 있었다. 손가락을 다쳤던 당시 바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남은 물건을 배달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피가 잘 통하지 않아 그 손가락만 차가워진단다.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손가락이 아려오는 듯, 그는 자신의 다친 손가락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 ⓒ투데이신문

◎ 5부: 비가 몰아쳐도… 나는 달린다

오전 10시 53분, 첫 배달처에 도착해 본격적인 배달 작업이 시작됐다. 그는 시동을 끄자마자 차문을 벌컥 열고 짐칸에서 물건을 잽싸게 꺼냈다. 기자는 차에서 내리고 있는데 그는 이미 짐을 내리고 있었다. 한번에 하나씩 들고가는 게 아니라 여러 물건을 가져갔다. 차를 주차해놓고 물건을 들고 뛰다가, 차를 타고 몇 미터 간 다음 내려서 다시 물건을 챙겨 뛰었다. 이를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복했다.

그 사이 비는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카메라를 들고 뛰던 기자는 촬영이 불가해 카메라를 차 안에 둘 수밖에 없었다. 최 팀장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창밖을 바라보며 푸념했다. “아, 비가 계속 오네. 비 온다는 예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떡하지. 참고로 저희는 비 와도 우산 안 씁니다. 아니 우산 쓸 시간도 없죠. 그냥 우산을 쓸 시간에 뛰어갔다 오는 게 나아요”.

▲ ⓒ투데이신문

깨진 안경이 내리는 비에 젖어갔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를 향해 “이제 그만 다니고 그냥 차 안에 앉아서 좀 쉬세요”라며 걱정했다. 이에 기자는 “오늘 하루는 팀장님의 그림자가 될 거예요”라고 응답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그러지 마세요. 무서워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기자는 원래 택배노동을 몸으로 체험할 계획이었으나 작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방법을 바꿨다. 

비가 거세지자 그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지금 내리는 비는 여성들이 얼굴에 뿌리는 화장품을 뜻하는 ‘미스트’같다고 했다. 그 정도로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장마철에는 거의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다시피 하므로 집에 들어가면 발이 하얗게 퉁퉁 불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 장마철이 되면 선풍기 앞에서 발을 말리며 자는 날이 많다.

눈오면 눈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맞고, 비오면 비 맞는 것. 이 역시 택배기사가 감수해야 할 고단함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 바퀴를 굴려야 한다. 그는 11년 동안 일하면서 딱 한번 쉬었다고 했다. 예전에 서울에 폭설이 와서 눈이 10cm가량 쌓였을 때였다. 택배기사에게 날씨란 ‘택배를 할 수 있는 날씨와 없는 날씨’로만 나뉜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은 비 맞는 것이 상관없지만 물건이 젖을까봐 노심초사였다. 온몸으로 비를 막으며 아기를 안고 가듯, 물건을 자기 가슴 속에 품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를 세운 뒤 내렸다. 그의 주차실력은 가히 고수급이었다. 핸들을 두 세번 정도 휙휙, 돌려 어떠한 공간도 쉽게 들어갔다. 그는 초창기에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적이 많았고 4만 5천원짜리 불법주차 딱지를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 ⓒ투데이신문

◎ 6부: 무거운 짐 들고 오르는 ‘계단산’

그는 차에서 오이 네 박스와 가지 두 박스를 꺼내 이를 휴대용 수레에 싣고, 지하에 자리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두 박스를 업은 채 끙끙거리며 계단을 세 번 오르내렸다. 저층이면 괜찮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사무실에 물건을 전할 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배달이 쉽고 편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나 주택은 어쩔 수 없이 두 다리를 의지해야 한다. 그는 계단을 2칸씩, 3칸씩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발걸음을 옮겨 한 건물 앞에 도착한 최 팀장은 현관 비밀번호를 척척 누르고 올라갔다. 오래 일하다 보니 건물 현관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사람이 많단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수많은 비밀번호를 외우는 일이다. 심지어 그에게 자신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최 팀장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의미가 아닐까. 같은 구역에서 12년쯤 일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그를 친근하게 대했다. 사무실이나 주택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배달했다.

▲ ⓒ투데이신문

오전 12시 47분경, 표시된 빨간점이 점점 사라질 무렵 그가 회사가 밀집해있는 빌딩숲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을 것 같다며 잠시 한숨을 돌리자고 했다. 그는 가방에서 노모가 싸준 음료수와 방울토마토를 주섬주섬 꺼냈다. 우리는 이것으로 목마름과 허기를 채웠다. 오늘이 그나마 한가한 날이며 쉬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방울토마토를 먹던 중 그가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85kg이었는데 택배 일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돼 70kg 이하로 내려갔어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일을 하니 당연했죠”.

그의 마음이 아픈 것은 너무 바빠 주변 사람을 돌아보지 못할 때다.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발인날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는 택배 일을 하면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밖에 없다며 씁쓸해했다.

한참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최 팀장의 얼굴의 미소가 번졌다. 훗날 개그맨 유재석과 같은 MC가 되고 싶다는 중학생 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잘 때 딸을 자신의 품 속에 꼭 안고 잔다고 한다. 딸사랑이 지극하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오후 1시가 넘자 배달이 시작됐다. 개인 가정집부터 시작해 쇼핑몰, 컴퓨터 업체 등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전달했다. 그는 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시동이 걸었다.

▲ ⓒ투데이신문

◎ 7부: 불러도 대답없는 그 이름

한 주택 앞에서 그가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참 난감해요.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곳 갔다가 오기도 그렇고요”. 최 팀장은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걸었다. 수차례 전화를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이내 차에 올라탔다.

요즘에는 고객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해 낯선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잠시 후 그의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고객들에게서 온 전화였다. 보통 ‘빨리 배달해달라’, ‘내 물건 언제 오냐’, ‘언제 집하하러 와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집에 가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물건을 전하고 나오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예전에 개한테 물린 적이 두 번 있었어요. 문을 딱 여는데 개가 달려오더니 다리를 확 물더라고요. 떼려고 흔들었는데도 안 놓는 거 있죠”. 그는 강아지 소리가 들리면 살짝 겁이 난다고 했다.

오후 2시 43분, 전화 받으랴, 물건 나르랴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스마트폰을 보던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어제는 이 시간에 160개를 찍었는데 오늘은 80개 정도네요”라며 물건 배달 현황표를 보여줬다. 그의 배송량은 하루 평균 200-300개. 이마저도 명절이나 새학기, 김장철 등이 되면 몇 배로 뛴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다가 오후 3시 15분이 돼서야 해가 떴다. 따스한 햇볕이 최 팀장의 젖은 옷과 머리를 말려주었다. 기자는 그가 오는 길목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기에 보다 앞서 뛰어가 요란한 셔터 소리를 냈다. 이 모습을 보던 그는 기자에게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 ⓒ투데이신문

◎ 8부: 손수레와 함께하는 ‘집하시간’

오후 4시가 되자 빨간점이 사라지고 파란점이 새로 찍혔다. 이제는 배달이 아닌 집하 작업을 하러 다녀야 했다. 집하란 택배를 보낼 사람들의 물건을 받아 오는 것을 뜻한다. 빨간점은 배달, 파란점은 집하 작업을 의미한다. 그는 지도에 파란점을 찍은 뒤 차를 몰고 M빌딩 앞에 도착했다. 처음 간 곳은 신발가게와 옷가게였다. 집하 물건 하나에 평균 700원 정도가 기사에게 주어진다. 택배 배달만 하면 돈이 되지 않으므로 집하를 병행해야 한다.

손수레는 최 팀장을 도와주는 또 하나의 친구다. 무거운 물건을 가져올 때는 어김없이 수레가 동원됐다. 그는 두 손에 짐을 들고 있을 때가 많으므로 스마트폰과 연결된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 전화를 받았다.

오후 7시, 기자는 그림자 노릇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팀장과 멀어지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왔다. 급기야 그를 쫓아가다가 놓쳐 결국 털썩 주저앉아 기다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차 타는 속도가 느려진 것을 눈치챈 최 팀장이 왜 이렇게 행동이 늦냐며 핀잔을 줬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자 “거 봐요. 그냥 다니는 것도 힘들죠?’하며 껄껄 웃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아니 쉬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 ⓒ투데이신문

오후 8시경, 우리는 서교동에서 영등포구 쪽으로 향했다. 드럼을 판매하는 업체가 거래처인데 그곳 물건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해 물건을 차에 실었다. 이후 다시 서교동으로 온 뒤 쇼핑몰 업체 등에서 물건을 받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오후 8시 40분, 드디어 집하 작업이 끝났다. 우리는 다시 아침에 갔던 마포지점 터미널로 향했다.

▲ ⓒ투데이신문

◎ 9부: 밥 굶고 짐 내리는 사람들

끈기, 성실함, 체력, 기억력, 길눈…. 그가 택배기사의 조건을 언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1순위라고 했다. “힘든 일일수록 웃으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힘든 게 덜 하거든요”.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후 8시 50분경, 차에서 내리자 택배기사들이 여기저기서 “아, 배고파”, “어휴, 진짜 힘들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물건을 내리고 퇴근하는 사람, 물건을 풀어 큰 차에 싣는 사람도 있었다. 이 시간까지 저녁은커녕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한 기사들이 많았다. “아, 빨리 끝내고 밥 먹어야지”. 누군가는 야식 먹을 시간, 한 택배기사는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할 생각에 침을 삼키고 있었다.

기사 코너명이 ‘땀으로 쓴 노동일기’인데…. 물건 하차 작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모두가 말렸지만 “하루 종일 한 게 없다. 이거라도 해야겠다”고 말하니 “그럼 한번 해보라”며 최 팀장이 기자를 향해 짐을 건넸다.

최 팀장이 짐칸에서 물건을 주면 이를 받아서 화물차에 올렸다. 10개 정도 옮겼을 뿐인데 다리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박스의 모서리가 살을 찌를 때 아팠고 종이박스가 살갗을 쓸고 지나갈 때 쓰라렸다. 짐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행여 박스를 놓칠세라 긴장하며 물건을 옮겼다. 이어 레일에 다른 짐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 오후 9시 40분, 레일이 멈춤과 동시에 택배기사의 하루 노동이 끝났다.

▲ ⓒ투데이신문

◎ 10부: 뼈빠지게 일하는 이유

“못볼 꼴도 많이 보고 뼈가 빠질 것 같은데… 가족 때문에 버틴다”

퇴근길 도로 위에서 이토록 힘들게 일하는 이유를 묻자 최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치가 떨리도록 무거운 짐을 드는 이유, 바로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이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